지난기고에서는 재개발조합의 수용권은 소유권 절대의 원칙을 깨뜨리고 일방적으로 소유권을 박탈하는 제도이기에 반드시 사전 협의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는 것, 협의절차는 당사자 간 원만한 합의로 갈등해결을 도모하려는 취지라는 것, 도시정비법상 협의절차와 토지보상법상 협의절차가 이원적으로 규정되었지만 실무상 토지보상법상 협의절차만 중시되어 재결신청 시기가 늦추어졌었다는 것, 청산대상자들은 ‘재결신청청구’로 대응하였는바, 조합이 재결신청청구를 받고도 60일 이내에 재결을 신청하지 않으면 연 15퍼센트의 가산금을 지급하게 됨으로써 재결신청이 간접적으로 강제된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개발조합은 토지보상법상의 협의절차가 남아있음을 이유로 여전히 재결신청을 서두르지 않았다는 것 등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여유로웠던 조합의 상황은 대법원 판결에 의하여 급변하였다. 조속재결신청청구에도 불구 토지보상법상 협의절차가 남아있음을 이유로 조합이 재결신청을 거부하자 현금청산대상자가 그 거부의 위법성을 다툰 사안에서 대법원이 “도시정비법은 협의의 기준이 되는 감정평가액의 산정에 관하여 별도의 규정을 두고 있으므로, 토지보상법상 감정평가업자를 통한 보상액의 산정이나 이를 기초로 한 사업시행자와의 협의 절차를 따로 거칠 필요도 없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토지보상법상 협의 및 그 사전 절차를 정한 각 규정은 도시정비법상 현금청산대상자인 토지등소유자에 대하여는 준용될 여지가 없다”고 판시하였기 때문이다(대법원 2015두48877 판결).


인용된 대법원 판결의 취지는 결국 “재개발사업에는 토지보상법상 협의절차 규정은 적용되지 않으니 토지보상법상 협의절차가 남아있다는 이유로 재결신청청구를 거부할 수 없다”는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대법원 판결은 후폭풍이 대단했다. 재결신청청구를 받고도 토지보상법상 협의가 남아있으니 아직은 괜찮다며 수년 간 재결신청을 미루어 오던 조합들 중엔 가산금 규모만 해도 수백억원에 이르는 곳도 생겨났다. 안타깝지만 이와 같은 사업장을 한방에 구제할 뾰족한 방안은 아직까진 발견되지 않았다.  


돌연한 대법원 판결에 의해 막대한 가산금을 물게 된 조합들의 사정은 안타깝지만 대법원이 선언한 법리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보긴 어렵다. 반면 대법원 판결 이후 지방토지수용위원회나 일부 하급심의 불합리한 업무수행과 판단으로 물지 않아도 되는 가산금을 부담하게 된 일부 조합들이 생겨나고 있는 상황은 참으로 우려스럽다.


우려스러운 상황의 출발점은 지방토지수용위원회(이하 ‘지토위’)였다. 분명히 대법원은 토지보상법상의 협의절차는 재개발사업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선언했음에도 불구, 지토위는 수십 년간 굳어져온 관행을 하루아침에 버릴 수가 없었나보다. 재결신청청구를 받아 하루하루 가산금이 쌓여져가는 상황에서 황급히 재결을 신청해온 조합에 대하여 ‘보상협의를 위한 감정평가 관련 서류나 협의절차 진행에 관한 서류 등이 미비 되었다며 신청자체를 받아주지 않았던 것이다.


대법원 판결의 취지에 따르면 토지보상법상 협의관련 서류는 재결신청을 위한 필수서류가 아님에도 지토위는 여전히 종래의 관행대로 토지보상법상의 협의절차를 거쳐 올 것을 강요한 셈이다. 


진퇴양난에 빠진 조합으로서는 재결신청을 받아주지 않는 지토위의 처분을 다투는 대신 수개월의 시간을 허비해 가며 토지보상법상 협의절차를 거쳐 다시 재결을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사례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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