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권은 사업시행자인 재개발조합에게 주어진 막강한 권력이다. 자본주의 체재의 대표적 법 원리 중 하나가 바로 소유권 절대의 원칙이다. 


개인에게 사유재산권, 즉 소유물에 대한 절대적 지배를 인정하고 국가를 비롯한 그 밖의 제3자 누구라도 간섭하거나 제한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수용권은 이러한 소유권 절대의 원칙을 깨뜨린다. 공공의 필요에 의해 소유자의 의사에 반하여 권리를 박탈한다. 물론 정당한 보상이 전제되어야 하지만 소유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권리를 빼앗을 수 있기에 수용의 상대방 입장에서 보면 대단히 폭력적인 권리 침해로 비춰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수용제도의 정당성을 위해 토지보상법은 다양한 규정을 설치하여 수용 상대방을 배려한다. 정당한 보상금의 산정과 지급이 핵심이지만 한 발 더 나아가 수용권을 행사하기 이전에 반드시 협의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가급적 일방적 힘의 행사가 아닌 당사자 간의 원만한 합의에 의한 갈등해결을 도모하도록 법적으로 촉구하는 것이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 침묵하지 않는다. 재개발조합에 수용권을 부여하면서도 현금청산기간을 두어 그 기간 안에 보상금액에 관한 협의를 하여 청산금을 지급하도록 한 것이다.  


적어도 정비사업에서 만큼은 도시정비법상의 협의절차와 토지보상법상의 협의 절차가 이원적으로 규정되어 일응 둘 모두를 거쳐야 비로소 수용권 행사가 가능해지는듯한 규범체계로 보였다. 정비사업 실무도 보상을 위한 사전협의 절차를 이원적으로 이해하였었다. 필연적으로 선행하는 도시정비법상 협의절차에 큰 비중을 두지 않고 후행하는 토지보상법상의 협의절차만 중시하여 집중적인 의미를 부여하였다.


당연하게도 분양신청기간이 종료되고 관리처분인가가 난 후에도 여전히 재개발조합은 수용권의 행사에 소극적이었고 간혹 청산금 지급을 원하는 현금청산대상자들이 왜 빨리 수용절차를 진행하지 않느냐고 항의하여도 ‘기다리라 때가 되면 곧 토지보상법상 협의절차를 진행할 것이다’라는 초연한 대응으로 일관했다. 이원적 협의체계이기 때문에 그렇게 처리하더라도 법적으로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확신했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국면에 청산대상자들이 들고 나온 회심의 카드가 바로 ‘수용재결신청청구’였다. 수용재결신청청구는 쉽게 말하면 상당한 기간이 지나도록 보상을 위한 협의가 진행되지 않거나 진행된다고 해도 협의가 성립할 가능성이 없거나, 실제 협의를 진행하였지만 불성립되었을 경우 수용의 상대방이 될 권리자들이 사업시행자에 대하여 당장 지방토지수용위원회에 수용을 신청하는 절차를 밟으라고 요구할 수 있는 제도이다. 


이것이 왜 회심의 카드였을까. 청산대상자들의 수용재결신청청구를 받고도 사업시행자인 조합이 60일 이내에 수용을 신청하지 않을 경우 60일이 경과한 날부터 실제 재결신청이 이루어진 날까지 연 15%라고 하는 초고율의 지연이자를 보상금에 가산하여 지급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일반 은행의 대출 이자율이 4% 남짓인 것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높은 이율이어서 사업시행자의 신속한 재결신청이 간접적으로 강제되는 셈이다. 공익사업을 위해 소유권 박탈이라는 절대적 희생을 감수하여야 하는 권리자들이 사업시행자의 일방적 수용권 행사를 노심초사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고려에서 수용 당사자 간 형평을 도모하기 위해 설치된 제도라는 걸 쉬이 짐작할 수 있다. 


청산대상자들의 반격에도 불구 재개발조합은 초연했다. 앞서 보았듯 협의절차를 이원적으로 이해하는 한 분양신청기간 만료 후 150일 또는 관리처분인가 후 90일 이내에 청산금액에 관해 협의하고 청산금을 지급하라는 도시정비법상 협의절차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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