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조합설립무효를 구하는 소송이 각광을 받던 시절이 있었지만 대법원에 의해 대부분의 쟁점이 정리되면서 소송의 빈도는 현저히 줄었다. 현재 소송중인 사안들의 면면을 보면 쟁점이 사실상 조합설립동의율 충족 여부 그 하나로 응축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조합설립동의율은 조합설립동의서의 숫자를 헤아리는 것이기에 결국 행정청에 제출된 조합설립동의서 중 효력이 없는 것을 가려내는 싸움이 소송의 본령이 된다. 조합설립동의서의 효력이 부인되는 대표적 사유는 무엇일까. 짐작하시는 바와 같이 동의서가 법정의 형식을 갖추지 못하였을 경우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은 조합설립동의서의 형식을 엄격히 규율(예전은 인감도장 날인과 인감증명서의 첨부, 지금은 지장날인과 자필서명, 신분증 사본의 첨부)하고 있는데 그러한 형식을 구비하지 못한 동의서는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실무상 시간에 쫒긴 나머지 일부 조합설립동의서가 형식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졸속으로 제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에 흠있는 동의서를 매의 눈으로 가려내어 조합설립동의율을 법이 정한 75% 미만으로 떨어뜨릴 수만 있다면 조합설립을 다투는 소송에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실제 소송과정에서 동의서의 형식적 요건 구비여부를 공정하게 판정할 매의 눈 역할은 감정인에게 맡겨진다. 감정인은 서면의 형상에 관하여 그 적법성 여부를 판정할 만한 전문적 식견을 갖춘 이들이기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감정인이 내린 결론이 재판부에 의해 그대로 인정되어 동의서의 효력을 좌우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만약 감정인의 판단에 의해 일부 동의서가 형식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판정되고 그로 인해 조합설립동의율이 75% 미만으로 떨어지게 되면 해당 조합은 소송에서 필패하게 되는 것일까. 


반드시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다. 만약 조합설립인가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이라면 감정인의 판단에 의해 법정동의율 미달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기만 해도 조합설립인가 취소를 면치 못하겠지만 조합설립인가의 무효를 다투는 소송은 사정이 다르다. 단순히 동의서에 흠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하자가 명백한 것이어야하기 때문이다.


만약 전문가인 감정인의 전문적 식견을 동원하고 나서야 비로소 밝혀질 수 있는 하자라면 그 하자가 과연 명백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대법원에 따르면 “도시정비법령이 조합설립인가를 위해 동의서를 제출토록 한 것은 행정청으로 하여금 인가신청시에 제출된 동의서에 의하여서만 동의요건 충족 여부를 심사하도록 함으로써 동의 여부의 확인에 불필요하게 행정력이 소모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위와 같은 대법원 판결의 취지에 비추어 행정청이 조합설립동의서의 형식적 요건을 심사하는데 있어 기울여야할 주의의 범위는 어디까지라고 보는 것이 온당할까. 전문가가 아닌 보통사람 수준의 육안이 그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즉 보통의 주의능력을 가진 실무담당 공무원이 육안으로 보아 해당 동의서의 형상이 형식적 요건을 갖추었다면 설령 후에 소송에서 전문가의 감정을 통해 잘못된 것으로 판단되더라고 그 하자는 명백한 하자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 옳다. 


만약 전문가적 판단을 동원하고 나서야 비로소 동의서의 유효여부를 처리할 수 있다면 제출된 동의서만으로 유무효를 가리게 함으로써 불필요한 행정력의 소모를 방지한다는 법의 취지에 반하기 때문이다. 감정인의 판단과는 별개로 무효소송에서의 동의서의 형식적 하자의 명백성은 일반인의 육안이 판단기준이 되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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