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들의 가장 주요한 권리 중의 하나가 조합원총회에 상정된 안건에 관하여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개별 조합원들의 의결권 행사가 충분히 누적되어야 총회진행을 가능하게 하는 의사정족수가 충족되고 나아가 의결정족수가 채워져 조합의 의사가 확정될 수 있다.


이렇듯 조합원의 의결권 행사는 개인적 차원의 의사결정에 그치지 않고 전체로 결합되어 조합의 의사를 형성한다는 점에 주목하여 표준정관은 의결권의 대리행사를 허용하지 않고 조합원이 직접 총회에 참석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조합원총회는 통상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개최된다. 아무래도 평일보다는 조합원들의 일정이 여유로워 총회참석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디 세상일이 그리 마음먹은 대로만 돌아가던가. 때로는 아무리 권리행사의 욕구가 충만해도 직접 총회에 참석할 수 없는 상황은 기어코 빚어지게 되어 있다. 만약 이러한 경우까지 직접 참석을 강요한다면 조합원들의 의결권 행사는 극도로 제한되고 심지어 계획했던 총회가 무산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표준정관 역시 이러한 상황을 대비하고 있다. 직접참석대신 서면결의서 제출에 의한 참석을 인정하고 배우자·직계존비속·형제자매 중 성년자를 대리인으로 정하여 위임장을 제출하는 경우 예외적으로 의결권의 대리행사를 인정한다. 특히 의결권을 대리행사할 경우 인감 또는 조합에 등록된 사용인감으로 대리인계를 작성·제출토록 하여 조합원 본인의 대리권 수여의사가 확실히 담보되도록 하고 있다.


정관이 예외적으로 의결권의 대리행사를 인정하긴 하지만 정작 위임장을 작성하여 대리인을 통해 권리를 행사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하다못해 동사무소에서 주민등록 한 통만 떼어 봐도 대리제도 이용이 그리 녹록치 않음을 금방 알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조합원의 가족 중 한 사람이 대리인으로 총회에 참석하면서 위임장을 제출하지 않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고 실제 소송과정에서도 의결권 행사의 효력이 다투어진다.


위임장 없는 의결권의 대리행사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이 있을 수 있다.


먼저 사전에 위임장을 제출하여야 한다는 정관의 방식을 따르지 않았을 경우 무조건 무효로 처리하는 것이 옳다는 견해이다. 대리권이 있는지 없는지에 관한 문제를 획일적 기준에 의하여 명확하게 정리하여야 총회결의 효력의 불확실성을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위임장을 제출하는 것은 본인의 대리권 수여의사를 확인하기 위한 보충적 자료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본인의 진정한 의사만 있었다면 위임장 등 대리권을 증명하는 서면은 추후에 보완되어도 무방하다는 입장이다. 총회결의의 확실성 보다는 개개 조합원의 의결권 보호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법원의 판단은 통일되어 있지 않은 듯하다. 사전에 위임장이 제출되지 않았음을 이유로 유효한 대리행사로 볼 수 없다는 취지의 결정도 있고, 추후에 위임장이 제출되어 본인의 의사가 확인되었다면 위임장없이 가족 등에 의하여 행사된 의결권을 무효로 볼 수 없다는 판단도 보인다.


사견으로는 총회결의의 확실성을 위하여 특별히 의결권 대리행사의 방식을 규정한 정관의 취지를 무시하는 해석은 곤란하다고 본다.


상법의 경우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대리행사하는 경우 반드시 사전에 대리권을 증명하는 서면을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만약 대리권을 증명하는 서면을 사전에 제출하지 않았다면 의결권 행사의 효력이 부인된다는 것이 법원의 통일된 결론이다.


대리권의 존재를 획일적 기준에 의하여 판단함으로써 결의성립의 확실성을 도모한다는 취지는 상법이나 조합의 정관이 다를 수 없다. 주주총회에 관하여 법원이 확립한 법리가 조합총회 사안에서 달라져야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따라서 위임장 없는 의결권의 대리행사는 무효라는 간명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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