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상 약간의 예외적 사업형태를 제외한다면 정비사업의 시행주체는 곧 정비사업조합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정비사업의 시행주체가 조합이라 해도 정비사업에 관한 모든 업무를 조합 스스로 처리할 수는 없다. 조합원들은 물론 집행부를 구성하는 조합임원들 역시 대개는 정비사업에 관한 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비사업조합이 수많은 협력업체를 선정하여 업무를 위탁하는 것은 조합 스스로의 업무역량이나 전문성을 보완하기 위해 필요할 뿐만 아니라 불가피하다. 


능력있는 협력업체를 선정하여 효율적인 업무수행을 도모하는 것이야말로 정비사업의 성패를 좌우할만한 요소이며 조금 과장을 보탠다면 협력업체의 역량이 곧 조합의 역량이다. 


도시정비법령이 정비사업전문관리업체, 설계업체, 시공자 등 주요 협력업체의 선정에 직접 관여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공정한 절차를 통해 역량있는 협력업체의 선정이 가능하도록 하려는 취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합의 협력업체 선정이 항상 성공적인 것만은 아니다. 실제 업무진행 과정에서 선정된 협력업체가 선정당시에 기대하였던 수준에 부응할만큼의 역량을 펼치지 못하는 경우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번 선정된 협력업체를 타 업체로 교체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만만한 작업은 아니어서 협력업체의 부실한 업무역량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지 못한 채 불편한 속앓이를 하는 조합도 적지 않다.


그렇다고 조합이 협력업체에 대한 불만을 늘 속으로만 삭일 수는 없다. 협력업체의 결정적 실수로 조합이 같은 절차를 반복하게 된다거나 아무리 독려하여도 조합이 원하는 수준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결과만을 가져올 때 부득이 조합은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게 된다.


기존 협력업체와의 관계정리에 관해서 조합이 흔히 의문을 갖는 사항은 법적으로 계약의 해지가 가능하냐는 것이다. 물론 협력업체가 계약상 의무를 위반하였을 때에는 당연히 해제권 또는 해지권이 조합에 발생하기에 특별히 논의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자잘한 실수나 단순한 역량부족에 그치는 등 딱히 계약에서 정한 해제·해지사유에 해당하기 어려운 경우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합의 협력업체와의 관계정리는 계약에서 정한 해제사유가 있는지 여부를 불문하고 원칙적으로 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조합과 협력업체와의 계약내용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민법상 위임계약이거나 도급계약, 혹은 이 둘이 섞인 혼합계약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위임’은 ‘사무처리의 위탁’을, ‘도급’은 ‘일의 완성’을 각 본질로 하는 민법상 전형계약이다. 우리 민법은 위임계약의 경우 특별한 사유없이도 계약당사자 양측에 ‘해지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다. ‘사무처리를 위탁’하는 것은 계약상대방을 신뢰하기에 가능한 것이고 따라서 계약당사자간 신뢰가 깨졌다면 그 이유를 불문하고 계약관계의 종료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신뢰를 바탕으로 할 때만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위임계약의 본질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도급계약 역시 일을 맡기는 도급인이 원하는 결과물의 도출을 본질적 목적으로 하기에 ‘일의 완성 전’이라면 도급인 언제든 수급인에게 손해를 배상하고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이렇듯 협력업체와의 관계정리가 법적으로 가능하다고 하여 계약관계의 종료를 선언하는 것이 항상 올바른 선택이라고 보긴 어렵다. 후속업체가 기존업체보다 반드시 유능하리라는 보장이 없고, 업체교체 과정에서 빚어지는 대·내외적 갈등국면은 자칫 정비사업의 진행을 더디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협력업체 교체라는 극약처방이 반드시 필요최소한에 그쳐야만 하는 현실적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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