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정비법상 재개발정비사업의 소유권 확보수단은 ‘수용’이다. 재건축정비사업에 비해 공공성이 짙은 연유로 공익사업의 대표적 사업수단인 수용권이 재개발정비사업조합에 주어진 것이다.


‘수용’이란 본디 소유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사업시행자가 일방적으로 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는 매우 효율적인 사업촉진수단이지만 소유자 입장에서 본다면 가히 합법을 가장한 무자비한 폭력으로 비추어질 법하다. 


수용권으로 중무장한 사업시행자에 비해 소유자의 입장은 매우 열악하다. 입법자 역시 상대적 약자인 소유자를 긍휼히 여긴듯하다. 사업시행자의 수용권 행사에 시간적 제한을 둔다거나, 본격적으로 수용절차를 밟기 전에 반드시 협의절차를 거치도록 한것, 나아가 소유자가 선제적으로 사업시행자에게 수용재결신청을 청구하고(속칭 ‘조속재결신청 청구’) 그럼에도 일정기간(청구를 받은 때로부터 60일) 수용재결신청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사업시행자에게 금전적 패널티(연 15%의 가산금)를 물게 만든 것 등이 모두 소유자를 위해 인정되는 토지보상법상 대응수단이다. 


이처럼 제한적 내용의 소유자 보호수단이 곧 사업시행자와 소유자 간 완벽한 무기대등 상황까지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수용권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사업시행자가 필요 이상 가혹하게 휘두르지 못하도록 효과적으로 제어하고 있다는 점만은 부인할 수 없다. 


최근 재개발사업장에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논제 중 하나가 바로 이 현금청산자들의 조속재결신청 청구와 그에 따른 사업시행자의 패널티 이자 부담에 관한 것이다. 그간 사업시행자인 조합은 현금청산 시기를 그리 민감한 사안으로 여기지 않아왔다. 그러던 것이 청산자들의 권리보호를 기치로 내세워 활동하는 변호사 기타 전문가들이 하나 둘 생겨나면서 본격적으로 토지보상법상 조속재결신청 청구와 사업자의 패널티 부담이라는 화두가 정비사업계에 급속히 확산되었고 급기야 지난해 11월 획기적인 대법원 판결로까지 이어졌다. 이 대법원 판결은 왜 획기적일까. 판결의 핵심 부분을 그대로 옮겨보자.


“토지보상법상 협의 및 그 사전절차를 정한 위 각 규정은 도시정비법 제40조 제1항 본문에서 말하는 ‘이 법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도시정비법상 현금청산대상자인 토지등소유자에 대하여는 준용될 여지가 없다고 보아야 한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앞서 살펴보았듯 본격적으로 수용절차를 진행하기에 앞서 반드시 ‘협의’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거의 모든 전문가들과 수용재결 실무담당자들, 심지어 해당사건을 담당하였던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까지 이때의 ‘협의’는 당연히 ‘토지보상법상 협의’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아무리 도시정비법이 ‘청산자가 된 날부터 150일 이내’(구법)라거나 ‘관리처분인가일로부터 90일 이내’(신법) 현금청산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으로 규정한들 조합은 청산시점에 조바심을 낼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도시정비법이 정한 기간에도 불구하고 토지보상법이 정한 별도의 협의절차를 거치지 않는 한 청산자들의 조속재결신청 청구라는 것이 도통 성립할 근거가 없기에(토지보상법상 협의절차가 반드시 선행하고 재결신청 청구가 다음으로 등장하는 것이 논리적 순서임) 그에 따른 패널티 역시 우려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이같은 정비사업계의 오랜 관행, 상식, 해석론을 송두리째 뒤엎었다. 조합이 사업현실을 고려하여 수용재결 시점을 늦출 수 있었던 것은 ‘토지보상법상 협의절차가 남아있고 그 협의절차를 거치고 나서야 수용재결신청 청구가 가능하다’는 철석같은 믿음 때문이었는데 대법원이 조합의 그 굳건한 ‘비빌언덕’을 깃털처럼 가볍게 날려버린 것이다.

☞다음 기고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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