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정비법은 정비사업의 주요국면마다 토지등소유자 또는 조합원들의 동의를 요구한다. 
 
토지등소유자나 조합원들의 의사를 결집하기 위해서는 총회의 의결이라는 형식을 갖추게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추진위원회 혹은 조합의 설립, 사업시행계획의 수립 등 단체를 구성하기 이전이어서 총회의 개최가 개념적으로 곤란하거나 주요 사안에 대해 개개인의 분명한 의사를 직접 확인함으로써 분쟁의 여지를 줄이고자 하는 경우 특히 ‘동의서’ 제도를 채택한 것이다. 
 
개인의 의사를 보다 분명하게 확인하고자 하는 동의서 제도의 근본취지에 걸맞게 도시정비법은 하위 법령에 위임하지 않고 직접 동의서의 형식에 관하여 규율한다. 종래 인감을 날인하고 인감증명서를 첨부하도록 하는 형식에서 현재는 지장날인과 자필서명과 함께 주민등록증, 여권 등 신분증명서의 사본을 첨부하도록 하는 내용으로 개정되어 시행되고 있다. 
 
비록 비용이 들고 번거롭긴 해도 일반적인 총회결의 보다 개개인의 의사를 직접적이고 분명한 방법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동의서의 큰 장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의서 자체의 효력을 둘러싼 분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동의서의 ‘위조여부’가 대표적 분쟁사항이다.
 
동의서가 ‘위조되었다’는 것은 동의서를 작성할 권한있는 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무단으로 작성되었다는 뜻이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작성된 동의서 이기에 무효가 당연하지만 정작 소송을 통해 그 위조를 밝히는 과정은 그리 녹록치 않다. 위조를 주장하는 소송당사자가 행정청에 제출된 동의서를 열람하거나 그 사본을 확보하는 것부터 난망이고 설령 동의서 원본을 확인하거나 사본을 확보하였다고 하여도 도대체 수많은 동의서 중 누구의 동의서가 위조된 것인지 일일이 가려내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입증과정이 지난하다는 사실상의 한계에 봉착할지언정 위조된 동의서가 무효라는 법리는 다툼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위조 여부를 가리는 과정에서 흔히 확인된는 애매한 경우다.  
애매한 사례의 정점이라 할 만한 것이 이른바 ‘서명대리’다. 본인이 지장을 날인하고 신분증명서의 사본까지 첨부하도록 허락하였으면서도 정작 서명은 편의상 남(대부분 배우자나 자녀)에게 대신하도록 한 케이스다. 서명대리 사례는 분명 동의서 작성이 본인의 의사에 기초하였다는 점에서 위조와는 판이하다.
 
서명대리로 작성된 동의서의 무효를 주장하면 상대변호사는 물론 담당 재판부의 안색까지도 사안의 성격만큼이나 애매해진다. 본인의 진의에 바탕하여 작성된 것이 분명한 동의서인데 고작 서명부분만 남에게 부탁했다고 해서 무효라고 주장하고 나서는 것은 너무 형식적이고 쪼잔한 주장 아니냐는 반문이 담긴 듯한 표정이다. 
 
동의서가 본인의 진의에 바탕하여 작성되었다는 실질에 천착한다면 서명대리되었다는 점 이외에 별다른 흠이 없는 동의서를 무효로 보는 것은 좀 심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법을 형식적으로 해석하여서는 곤란하고 그 취지를 훼손하지 아니하는 범위 내에서 적절하고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해내는 것이  지혜로운 처사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서명대리를 유효한 동의서로 수긍하는 해석론은 도시정비법의 취지에 정면으로 반한다. 도시정비법은 분명 동의서의 서명이 ‘자필’일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자필’은 말그대로 ‘본인이 직접 써야 한다’는 의미이다. 즉 본인이 아닌 제3자가 서명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 법이 이토록 명백한데 ‘서명대리’도 괜찮다는 주장은 이미 법해석 범위를 벗어나 새로운 법을 만드는 행위와 다름없다. 모름지기 법을 만드는 것은 입법부의 역할이지 변호사나 법관의 몫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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