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고에 이어) 지난 기고에서는 조합이 총회를 개최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적·경제적 비용이 수반된다는 것, 총회가 개최되기 직전 법원의 개최금지 가처분 결정에 의하여 총회가 무산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 법원이 개최금지 가처분 결정을 내리기 위하여는 신청인에게 총회 개최로 인해 침해될 권리가 있어야 할 뿐 아니라(피보전권리), 개최를 금지하지 않으면 신청인의 권리행사가 불가능해지거나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가져올 급박한 염려가 있어야 한다는 것(보전의 필요성) 등을 살펴보았다. 


한동안 도시정비법령이나 정관상 정하여진 총회소집의 기본절차가 조합사정 등을 이유로 변용·수정되거나 무시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지만 법원의 총회 개최금지 가처분결정이 잦아지면서 기본절차를 무시하면서까지 총회 소집을 시도하는 경우는 많이 줄었다.


소집절차의 위반 여부가 그간 가처분 사건의 주요쟁점이었다면 최근의 가처분 사건의 특성은 새로운 쟁점들이 등장하는 추세다. 기본절차의 위반이 가처분 결정의 사유가 될 수 있다는 점에 관하여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몇몇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법원의 가처분 결정이 논란이 될 소지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새로운 쟁점의 등장에 따라 법원의 결정이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늘었다. 비근한 예로 가장 최근의 법원 결정을 살펴보자. 


시공자 선정 총회를 소집하는 과정에서 A사와 B사의 홍보전이 격화되었고 그 과정에서 총회 결과가 자사에 불리하게 나올 것으로 예상한 B사가 조합원 몇 명과 함께 조합을 상대로 총회개최금지 가처분을 신청하였다. 


사유는 A사의 입찰조건 변경이었다. 물론 조건의 변경은 조합에 유리한 내용이었고 조건의 변경으로 직접 불이익을 입을 곳은 B사였기에 B사의 총회개최금지 신청은 비록 조합을 상대로 하였다는 점에서 무리한 것으로 비추어지긴 하였지만 심정적으로는 충분히 이해가 갈만한 조처였다고 볼 수 있다.


의외인 것은 오히려 법원의 결정이었다. 법원은 일단 B사의 가처분 신청은 부적법하다고 보았다. 심정적으로야 억울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법적으로는 총회개최를 금지함으로써 보호되어야 할 권리, 즉 피보전권리가 B사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총회개최 금지가처분에서의 피보전권리는 통상 조합원의 의결권으로 파악되기에 그러하다.  


문제는 과연 조합원의 의결권이 침해될 가능성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법원은 A사의 입찰조건 변경은 입찰의 공정을 해하고 조합원들의 자유로운 결정권이나 선택권을 침해한다고 보았다. 나아가 총회가 진행될 경우 채권자들은 물론 조합과 나머지 조합원들에게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발생할 염려가 있다고 보았다. 


A사의 입찰조건 변경이 조합에 유리한 내용이라면 직접 피해자는 경쟁관계에 있는 B사인데 법원은 오히려 조합원과 조합을 피해자로 파악한 셈이다. 상식적 차원에서 보자면 이 사안은 피해자인 B사에게는 피보전권리가 없고 조합원이나 조합에게는 손해의 염려가 없어 보전의 필요성이 인정되기 어렵다. 


어찌됐든 법원은 총회를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가처분 결정은 본안 소송과 달리 사실상 상급심에서 다툴 기회나 실익이 없기에 더욱 치명적이다.

위 사례는 가처분 사건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 준다. 누구도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 그 어떤 사건 보다 재판부의 성향에 따라 좌우되는 정치적 성격이 짙다는 것, 한번 내려지면 사실상 다툴 방법이 없다는 것 등이다. 


중요한 안건 처리를 위한 총회를 목전에 두고 있는데 개최금지 가처분이 신청되었다면 조합이 가장 먼저 취하여야 할 조치는 무엇일까? 비극적이게도 담당재판부의 프로필과 성향파악이 우선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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