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홍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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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자 선정은 정비사업의 성패가 달린 중대한 사안입니다. 정비사업 추진 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사업비 조달과 공사비 책정에 따른 사업성 증감, 아파트 브랜드, 이주비 지원 등 핵심 사안들을 판가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시공자와 조합의 관계가 크게 작용하다보니 선정 과정이 비리의 온상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영향으로 시공자 선정 시기는 2003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정 이후부터 많은 변화를 겪어왔습니다. 항상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는 시공자 선정 시기 변천사를 조명해봤습니다.

[그래픽=홍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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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2003년 7월 도시정비법이 제정되면서부터 시공자 선정 시기는 재개발·재건축 모두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뒤로 정해졌습니다. 이와 함께 정비사업전문관리자 제도를 신설해 시공자로부터 지원받던 초기 자금 문제와 전문성을 보완하고, 수주 비리를 억제하고자 했습니다.

도시정비법 시행 후 주택가격이 오르자 정부는 재건축에만 칼을 빼들었습니다. 재건축 조합원 지위양도를 금지하고, 임대주택 의무 공급, 소형평형 조성을 의무화한 것입니다. 아울러 시공자 선정 시기는 2005년 3월부터 재건축은 사업시행인가 후로 유지하고, 재개발은 관련 규정을 폐지했습니다.

재개발만 규제가 없어지자 많은 추진위원회들의 시공자 선정이 이어졌습니다. 이런 흐름은 2006년 8월 재개발사업 시공자 선정을 조합설립인가 후로 개정하면서 일단락됐습니다. 이후 2008년 국제금융위기가 닥치며 부동산 시장은 얼어붙었습니다. 시공자가 조합에 구애하던 수주 행태는 정반대로 바뀌었습니다. 미분양 우려가 커지자 조합이 건설사에 PR하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이에 따라 정부도 시공자 없이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진단했습니다. 이에 2009년 2월부터 재개발·재건축 모두 시공자 선정 시기를 조합설립인가 이후로 통일했습니다. 다만 서울시만은 2010년에 공공관리제도를 도입하면서 정비사업 시공자 선정을 사업시행인가 이후로 미루는 유일한 도시가 됐습니다.

이렇게 약 13년 동안 유지됐던 시공자 선정 시기가 변화할 전망입니다. 오세훈 시장이 지난해 말부터 신통기획 시행지만 조합설립인가 이후로 시공자 선정을 앞당긴다는 조례개정안을 공포한 것이 발단이 됐습니다.

일반 사업장들은 불공정하다며 반발했습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달 2일 서울 모든 정비구역들은 올 7월부터 조합설립인가 이후 시공자를 선정한다는 안건을 발표했습니다. 이로써 시공자 선정 시기는 2009년과 동일하게 회귀하게 됐습니다.

 

규제 수단으로 활용했더니… 사업지연 등 부작용만 양산

신속한 사업추진·공사비 절감 ‘공염불’

 

정부와 서울시는 공사비 상승을 방지하겠다는 등의 의도로 시공자 선정 시기를 조정했지만 오히려 규제로 작용하면서 사업만 지연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공공은 선정 시기를 늦추면서 부적절한 수주 과정, 과도한 공사비 인상, 불필요한 설계변경 등 부문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초반 자금 문제는 지자체 지원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시의 자금지원력은 미미했습니다. 지난해 서울시의회 도시계획관리위원회의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년 간 조합과 추진위원회가 지원받은 금액은 신청금액의 15%에 그쳤습니다.

조합·추진위가 5,720억원의 자금지원을 요청했지만, 실제 지원금액은 865억원에 불과했습니다. 구역당으로 환산하면 평균 2억5,000만원 수준이었습니다. 자금조달이 어려워지자 자연스럽게 집행부는 위축되고 비효율적인 사업지연이 발생 했습니다.

시장은 사업시행인가 후 시공자를 선정하면 공사비를 절감할 수 있다던 시의 주장과 반대로 흘러갔습니다. 관은 이미 건축심의 단계를 거쳐 설계안이 나왔기 때문에 설계변경 등을 위한 불필요한 과정을 생략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시공자와 본계약을 진행하는 관리처분인가까지의 기간이 짧아 사전 계약과 공사비 증가가 크게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효성은 떨어졌습니다.

건설사들은 시공자로 선정된 후 자사의 대표 브랜드를 내건 아파트를 건립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특화설계, 특허기술들을 적용하게 되면서 설계변경은 필수불가결한 사항이 됐습니다. 설계 변경안에 따른 공사비 인상도 기존과 대동소이했던 것입니다. 또 공사비 검증 제도가 시행되면서 시공자 선정을 미룰 필요가 없다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실제로 조합설립인가 후 시공자를 선정하는 구역과 사업시행인가 후 시공자를 선정하는 구역 간의 사업속도 차이도 뚜렷했습니다. 광명뉴타운과 성수지구, 한남뉴타운은 비슷한 시기에 출범해 사업에 착수했습니다.

광명뉴타운 일대 재개발 현황 [그래픽=홍영주 기자]
광명뉴타운 일대 재개발 현황 [그래픽=홍영주 기자]

광명뉴타운의 경우 이미 입주한 단지도 있고 전 구역 모두 관리처분인가 이상의 단계를 밟으면서 사업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반면 성수지구는 시공자를 선정한 곳이 단 한 곳도 없고, 한남뉴타운도 첫 삽을 뜬 구역이 전무한 상황입니다. 이처럼 시공자 선정 시기를 조정한 결과는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많았다는 점에 업계는 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이호준 기자 leejr@ar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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