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홍영주 기자]
[그래픽=홍영주 기자]

정비사업에 경쟁이 사라졌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기준금리 인상, 건설 원자재가격 상승 등에 따른 미분양 우려로 건설사들이 출혈경쟁을 피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우수한 입지와 대규모 신축 물량을 갖춘 사업장들이 대기 중으로 선별적인 출혈경쟁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다.

지난해에도 정비사업에서 경쟁이 펼쳐진 곳들은 손에 꼽힐 정도다. 대표적인 사업장은 서울 용산구 한남2구역 재개발과 경기 안양시 관양현대아파트 재건축으로 교통과 학군, 직주근접 등의 측면에서 우수한 입지를 자랑하는 곳들이다.

지난 10일 HDC현대산업개발이 경기 안양시 관양현대아파트 재건축조합과 가계약을 체결했다. 재건축을 통해 최고 36층 높이의 아파트 1,313가구 규모로 지어지며, 공사비는 약 4,174억원 규모로 파악됐다.[조감도=HDC현대산업개발 제공]
지난 10일 HDC현대산업개발이 경기 안양시 관양현대아파트 재건축조합과 가계약을 체결했다. 재건축을 통해 최고 36층 높이의 아파트 1,313가구 규모로 지어지며, 공사비는 약 4,174억원 규모로 파악됐다.[조감도=HDC현대산업개발 제공]

먼저 관양현대의 경우 지난해 초 HDC현대산업개발과 롯데건설이 맞붙었다. 양사가 내건 조건은 파격적이었다.

당시 HDC현산은 대표이사가 직접 나서 세계적인 설계사인 SMDP와의 협업과 대물변제를 통한 조합원 이익, 후분양 방식 등을 보장했다. 롯데도 조합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사업추진비 책임조달, 골든타임 분양제 등 달콤한 조건으로 승부를 걸었다. 결과는 HDC현산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한남2구역 조감도 [사진=조합제공]
한남2구역 조감도 [사진=조합제공]

한남2구역 역시 지난해 하반기 불꽃 수주전이 펼쳐졌던 사업장이다. 양사는 자사가 내건 사업조건을 ‘최적’이라며 홍보에 나섰다.

대우는 기존 건폐율을 낮춰 동간거리를 확보해 개방감을 극대화하고, 4,790평 규모의 럭셔리 커뮤니티를 조성하는 등의 내용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롯데도 분담금 100% 입주 4년 후 납부, 입주시까지 금융비용 전액 롯데가 부담하겠다는 내용으로 맞섰다. 승리의 깃발은 대우건설이 거머쥐었다.

지난해 2개 사업장 외에 진검승부가 펼쳐진 사업장은 사실상 찾아보기 힘들다. 2022년 누적 수주액 1위를 차지했던 현대건설조차 대부분 수의계약으로 시공권을 확보했다. 무려 9조원을 훌쩍 뛰어 넘는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하면서도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한 경쟁 이슈는 없었다. 대전 서구 도마·변동5구역에서 GS건설과 컨소시엄을 이뤄 두산건설과 맞붙었지만, 모두가 예상했듯이 컨소시엄측의 싱거운 승리로 마무리됐다.

해가 바뀌면서 올해도 수의계약이 주를 이루고 있다. 현대건설이 경기 일산 강선마을14 리모델링, GS건설이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5단지 재건축, 포스코건설은 서초구 방배신동아 재건축을 수주하면서 마수걸이 수주에 성공했다. 모두 수의계약이다. 이 외에도 대형사 곳곳이 연이어 수주 소식을 알리고 있지만, 경쟁은 전무하다.

건설사들이 경쟁을 피하는 이유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상승한 원자재가격과 기준 금리 인상에 따른 부동산시장 하락세 등을 꼽는다. 경쟁을 최대한 줄여 지출을 낮추고, 앞으로 찾아올 수 있는 미분양 리스크에 대비하자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경쟁이 펼쳐질 곳으로 예상되는 대어급 사업장들은 시공자 선정 과정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미리 제반작업에 착수했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시장 경기 하락세에서도 미분양 우려를 잠식시킬 수 있을만한 입지를 갖췄거나 수주 후 홍보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알짜배기 사업장에 한해서다.

일례로 한남2구역의 경우 한강변 조망에 교통, 학군, 직주근접 등의 입지를 갖췄다는 평가와 함께 수요자들의 관심이 높다. 강변북로에 위치해 있어 신축 아파트가 들어설 경우 시공자인 대우 브랜드에 대한 홍보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대우와 롯데가 자존심을 내걸고 한 판 승부를 펼쳤던 이유이기도 하다.

하반기 건설사들의 눈길은 특정지역으로 쏠릴 것이라는 관측이다. 성수지구와 압구정지구, 여의도지구, 노량진뉴타운 등 대규모 신축 물량과 우수한 입지조건을 갖춘 곳들이 대표적이다.

이혁기 기자 lee@ar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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