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상 도급(또는 위임)의 성질을 갖는 조합과 협력업체 간 계약의 경우, 민법상 자유로운 해지 조항의 적용을 배제하기로 약정한 사정이 없는 이상 도급인(또는 위임인)의 자유로운 계약 해지가 가능하기 때문에, 약정상 해지사유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라 하더라도 조합은 필요에 따라 협력업체와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려 할 때가 있다.

그런데 계약 해지 시점에 용역계약에 따른 업무가 아직 본격적으로 수행되기 전인데도 이미 조합이 계약금을 지급하였다면, 조합이 계약을 해지함과 동시에 이미 지급한 계약금을 반환받을 수 있을까. 이 경우 조합 입장에서는 약정상 해지사유 없이 계약을 임의로 해지하는 것이므로 이미 지급한 계약금을 반환받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위와 같이 조합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하였다고 하여 이미 지급한 계약금의 반환을 지레 포기하기는 너무 이르다.

계약을 해지한 자가 이미 지급한 계약금을 반환받지 못하는 것, 다시 말해 계약을 해지당한 자로부터 계약금을 몰취당하는 것은, 이미 지급한 계약금을 ‘위약금’의 성격으로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특별한 사유 없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하여 계약상 의무를 불이행하였으므로 이에 대한 페널티를 부담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계약서상 지급되는 계약금을 ‘위약금’으로 한다고 특별히 약정한 바 없는 이상, 일방 당사자의 귀책사유로 인하여 계약이 해지되었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은 계약불이행으로 입은 실제 손해만을 배상받을 수 있을 뿐, 계약금이 위약금으로서 상대방에게 당연히 귀속되는 것은 아니다. 즉 용역계약 체결 시에 일반적으로 지급되는 계약금을 ‘위약금’으로 단정지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전제에서, 계약 체결 당시 지급하는 계약금은 ‘위약금’의 성질을 갖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선금’, 즉 장차 용역업무가 수행될 것을 전제로 이에 대한 대가를 미리 지급하는 비용의 개념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따라서 계약에 따른 용역업무가 실제로 수행된 바 없는 상태에서 계약이 해지되었다면, 미리 지급한 용역대가는 당연히 반환하여야 하는 것이며, 이는 계약 해지의 귀책사유가 누구에게 있는지에 따라 결론을 달리 하지 않는다.

우리 법원 역시, 일정한 용역을 완수한 시점에 용역대금을 분할 지급하는 것으로 정하는 내용의 용역계약이 체결된 사안에서, “원고로서는 계약금을 제외하고는 일정 용역을 완수하여야만 비로소 그 용역대금을 지급받을 수 있게 되어 있고, 각 용역대금을 지급받을 때 선금을 정산하는 약정을 별도로 두고 있지 않으므로, 위 계약금은 이 사건 계약에서 정한 각 용역을 수행하기 위하여 원고가 지출해야 하는 비용을 먼저 일부 지급하여 주는 선금의 성격을 가진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하면서, ‘선금’의 개념으로 지급한 계약금 중 이미 수행된 용역업무에 관한 부분을 제외한 계약금은 계약을 해지한 당사자에게 반환하여야 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제주지법 2018나).

그러므로 조합이 계약을 체결함과 동시에 계약금을 지급한 뒤, 아직 협력업체가 실제로 용역업무를 수행하지는 않은 상태에서 용역계약을 해지하고자 하는 경우, 계약금의 성격을 위약금으로 정해놓은 사정이 없다면, 계약 해지를 통보함과 동시에 이미 지급한 계약금의 반환을 청구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계약 체결 이후부터 해지 시점까지 용역업체가 실제로 업무를 일부 수행한 사실이 있다면 해당 업무에 대한 대가는 총 용역대가 중 차지하는 비율만큼 환산되어 공제될 수 있고, 도급인의 임의의 계약 해지에 따른 수급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인정됨에 따라 이행이익 상당의 손해배상액 역시 상계처리되어 공제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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