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홍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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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강남 재건축을 수주하는 과정에서 금품 등을 제공한 대형 건설사 2곳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 도시정비법 시행 이후 시공자 선정 과정에서의 불법 행태가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수주 비리가 이어지고 있는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그동안 시공자와 관련한 법령이나 제도는 지속적으로 강화되어 왔다.

하지만 강남 등 일부 시공권 경쟁이 치열한 현장에서 금품·향응을 제공하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또 자사의 대표 아파트나 모델하우스를 견학한다는 명분으로 조합원에게 여행을 보내 식사나 선물을 제공하는 이른바 ‘조합원 투어’도 수주경쟁 현장에서는 일반화된 상황이다. 과거 법원이 건설사의 불법 행위에 대해 관대한 판결을 내린데다, 공공지원제도마저 방치하면서 수주비리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롯데·대우, 강남 재건축서 금품 제공해 유죄 판결… 강화된 처벌 규정은 적용되지 않아

법원이 강남 재건축 수주 과정에서 적발된 롯데건설과 대우건설의 비리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

롯데건설은 지난 2017년 잠실 미성·크로바아파트 재건축 시공자 선정 과정에서 현금 제공을 비롯해 총 224회에 걸쳐 4,300여만원 상당의 금품·향응을 제공하거나, 약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조합 임원에게 시공자 선정을 청탁하면서 5,000만원이 넘는 다단계 제품을 사주기도 했다.

이어 롯데건설은 서초 신반포15차 재건축 시공자 선정 당시에도 조합원들에게 리조트나 호텔 숙박 등을 합쳐 1억여원 상당의 금품·향응 등을 제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롯데건설에 도시정비법과 건설산업기본법을 위반했다고 보고 7,0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대우건설도 신반포15차에서 시공자로 선정되기 위해 현금과 선물 등을 제공한 혐의가 인정돼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유죄 판결을 받았다. 대우건설에게 벌금 3,000만원과 직원에게 집행유예 등이 각각 선고됐다.

다만 두 건설사는 시공자 선정 취소나 공사비 20% 이하의 과징금, 입찰참가 제한 등의 처벌은 적용 받지 않을 전망이다. 해당 규정은 2018년 6월에 신설된 규정인 만큼 처벌이 강화되기 전에 시공자를 선정했기 때문이다.

 

▲개별홍보·금품제공 있었어도 투표엔 영향이 없다? 법원 관대한 판결

건설사들이 수주 과정에서 불법을 자행한데는 법원이 솜방망이 처벌이 한 몫을 했다는 분석이다. 대표적인 판결이 바로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1·2·4주구 재건축 관련 판결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일부 조합원이 조합을 상대로 낸 ‘총회결의 무효 확인’ 소송에서 현대건설의 시공자 선정이 유효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판결문에 따르면 지난 2017년 조합은 건축심의를 완료한 이후 공동사업시행자를 선정하기 위해 입찰 공고를 냈다. 입찰에는 현대건설과 GS건설이 참여해 공동사업시행 건설사로 선정되기 위해 경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현대건설은 법령에서 금지하고 있는 개별홍보행위와 금품 등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 조합원들은 입찰의 공정성을 방해하고, 조합원들의 결정권·선택권에 영향을 미쳐 시공자 선정이 무효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현대건설의 행위가 시공자 선정 결의를 무효로 볼 만큼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입찰지침서에는 건설사가 3회의 홍보규정 위반사실이 적발될 경우 입찰 자격을 박탈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3회 이상 개별홍보행위가 적발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또 조합원들에게 무려 133회에 걸쳐 1억4,000여만원 상당의 금품을 제공한 혐의가 있지만, 당시 도시정비법 위반 여부를 두고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금품제공 여부를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조합원들에게 각종 물품을 제공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지만 금품의 금액이 30~200만원 사이로 비교적 소액인데다, 금품을 제공 받은 조합원이 133명 미만이라는 점도 판단 근거로 삼았다. 즉 현대건설이 GS건설보다 409표를 더 득표했는데 금품을 제공 받은 조합원을 제외하더라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란 점을 반영한 것이다. 이사비로 세대당 7,000만원을 무상으로 지급하겠다는 약속도 재산상 이익을 약속한 것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이러한 판결들이 건설사들에게 ‘일단 따고 보자’는 식의 수주 행태를 이어가는 환경을 제공했다고 비판이 나왔다.

한 법률 전문가는 “해당 판결은 술을 먹고 운전했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수주 비리와 관련해서는 법원의 엄격한 법리적 해석이 필요함에도 정반대의 판결을 내림으로써 수주전에 비리가 만연한 원인 중 하나가 됐다”고 지적했다.

 

▲시공자 수주 비리 막아 정비사업 투명성 높이겠다더니… 서울시 공공지원자도 방치만

잠실 미성·크로바와 신반포15차는 공공지원 대상이었음에도 공공지원자의 관리·감독은 사실상 유명무실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시공자 선정시기만 늦춘 공공지원제도에 대한 폐지론까지 나오고 있다.

공공지원제도는 지난 2010년 서울시에서 최초로 도입된 공공관리제도가 원조다. 당시 시는 정비사업의 근본적인 문제는 시공자를 비롯한 협력업체 선정 과정에서 발생한다고 판단했다. 건설사로부터 자금을 받은 정비업체가 조합의 협력업체로 선정되면 해당 건설사가 시공자로 선정되도록 불법을 저지른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공공이 정비업체를 대신해 시공자 선정전까지 자금을 지원하는 대신 시공자 선정시기를 사업시행인가 이후로 늦추는 방안을 추진했다. 특히 시는 공공이 정비사업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협력업체 선정 과정에서의 비리를 방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공관리제도가 도입된 이후 10년이 넘었지만, 시공자 선정 과정에서의 불법은 줄어들지 않았다. 과거에는 조합장이나 일부 조합임원을 대상으로 금품을 제공했다면, 최근에는 아예 조합원 대다수를 상대로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하는 사례가 늘었다는 것이 업계의 지적이다.

실제로 미성·크로바 재건축 시공자 선정 당시 공공지원자인 송파구청은 이사비 등에 대한 제안을 현실화할 것으로 요구하는 정도에 그쳤다. 실질적인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초구청 역시 신반포15차 시공권 수주 과정에서 롯데건설과 대우건설이 모두 불법 행위를 저질렀지만, 건설사의 비리를 막지 못했다.

한 정비업체 관계자는 “서울시는 정비업체와 건설사의 연결고리를 끊으면 수주 비리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공공관리제 도입 후 10여년 동안 동일한 일이 반복됐다”며 “조합의 자금줄만 막아놓았을 뿐 사업추진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공공지원제도는 폐지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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