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조합이 조합설립에 동의하지 않은 토지등소유자에게 매도청구권을 행사한 이후에도 그 토지등소유자는 조합설립동의서만 제출하면 언제든 조합원이 될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하여 최근 부산고등법원 판례가 나왔다.

부산의 한 재건축조합이 조합설립에 동의하지 않은 토지등소유자들을 상대로 매도청구소송을 제기했다. 3년 넘도록 다투어진 1심에서는 오로지 매매대금 산정 시점과 감정평가액의 타당성만이 쟁점이었다. 그런데 2심 진행 중 조합설립 미동의자인 피고들이 갑자기 조합에 조합설립동의서를 제출하면서, 조합원인 자신들을 상대로 매도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조합설립에 동의하지 않은 자는 분양신청기한까지 조합설립동의서를 제출하여 조합원이 될 수 있다’고 규정한 조합정관의 내용을 근거로 삼은 것이다.

이에 대해 조합이 다투었지만, 부산고등법원은 위와 같은 정관 규정 등을 근거로, ‘조합이 조합설립 미동의자들을 상대로 매도청구권을 적법하게 행사하였다고 하더라도 토지등소유자는 분양신청기한 만료시까지 조합에 조합설립동의서를 제출함으로써 조합원의 지위를 취득할 수 있고, 그 경우 조합은 조합원의 지위를 취득한 토지등소유자를 상대로 매도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판시하며 매도청구를 기각했다.

재건축조합이 조합설립 미동의자들에 대해 갖는 ‘매도청구권’은 형성권이다. 형성권이란 권리자의 일방적 의사표시로 법률관계를 확정적으로 발생·변경·소멸시키는 권리로, 일방적인 의사표시로 상대방의 법적 상태를 강제로 변동시키는 효과가 있으므로 법률의 규정이 없으면 인정되기 어렵다.

조합이 적법하게 매도청구권을 행사하고 그 의사표시가 상대방에게 도달하였다면 확정적으로 매매계약이 체결된 것이어서 조합이나 토지등소유자 모두 일방적으로 그 매매계약의 효력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판결은 형성권 행사의 효력을 간과하고, 법률의 규정 없이 조합의 형성권 행사를 무력화시키는 또 다른 초월적인 형성권을 만들어 낸 것이다.

조합설립 미동의자도 분양신청기한까지 조합설립동의서를 제출함으로써 조합원이 될 수 있다고 규정한 정관의 취지는 조합이 일종의 시혜적 조치로서 조합설립 미동의자에게 조합가입 기회를 부여할 수 있다는 의미일 뿐, 그들에게 일방적인 조합가입권을 부여하는 취지가 아니다. 나아가 정관은 조합원들에 대하여만 구속력을 가지는 것으로서 조합설립에 동의하지 않음으로써 애당초 조합원이 된 적이 없는 토지등소유자에게 적용될 여지가 없으므로 그러한 규정은 조합설립 미동의자에 대해 ‘일방적 조합가입권’이라는 형성권을 인정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

도시정비법이 정한 ‘재건축사업 참가 여부를 촉구받은 날로부터 2개월’은 매도청구권을 행사하는 조합과 그 상대방 모두를 구속하는 것으로, 조합설립 미동의자가 ‘조합원으로 가입할 수 있는 종기’인 동시에 조합이 ‘매도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시기’이다.

따라서 그 기간이 지나면 이들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이기로 하는 조합원들의 총의가 없는 이상 조합설립동의서를 제출하더라도 조합원이 될 수 없다고 새기는 것이 옳다.

뒤늦게 조합에 가입했어도 다시 분양신청을 하지 않는 방법으로 조합에서 탈퇴할 수 있으므로, 결과적으로 이번 판결은 조합설립 미동의자가 사업진행 상황과 부동산 시세변동을 지켜보다가 ‘매도청구의 의사표시가 상대방에게 도달한 날’과 ‘분양신청기간 종료일 다음 날’ 중 유리한 보상금 산정기준일을 선택하는 것을 눈감아 준 셈이다.

조합설립에 동의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재건축사업으로 인한 이익과 위험부담을 회피한 이들에게 보상금 산정기준시점을 선택하도록 하는 것은 구체적 타당성의 관점에서도 용인되기 어렵다. 대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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