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홍영주 기자]
[그래픽=홍영주 기자]

건설사의 이주비 제안을 금지하는 도시정비법 시행을 앞두고 일선 현장에서는 비상이 걸렸다. 대출 규제로 이주비 마련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시공자의 이주비 지원까지 막힐 경우 이른바 ‘돈맥경화’ 현상으로 이주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재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의 LTV(주택담보대출비율) 상한은 40%, 조정대상지역은 50%가 각각 적용된다.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지역 대부분이 규제지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이주 시 주택담보의 50% 이하만 대출이 가능한 셈이다. 이에 따라 조합은 시공자의 신용대출이나 특수목적법인 등을 통해 추가 이주비를 조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문제는 도시정비법이 개정되면서 건설사의 이주비 제안이 불가능해졌다는 점이다. 조합원이 이주를 나가면 대출 규제 범위에서 새로운 집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전세나 월세를 끼고 투자하는 이른바 ‘갭투자’의 경우에도 전세금이나 보증금을 지급하는데도 어려움이 있는 만큼 이주를 거부할 우려도 있다.

나아가 현행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 상 이주비 제안이 가능한 재개발도 이주비 지급에 난항을 겪을 가능성도 있다. 계약업무 처리기준에는 재개발의 경우 건설사가 금융기관의 이주비 대출에 대한 이자를 대여하거나, 금융기관으로부터 조달하는 금리수준으로 추가이전비를 대여하는 것을 제안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개정법에는 정비사업의 종류와 무관하게 건설사가 이사비나 이주비, 이주촉진비 등을 제안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대통령령을 통해 구체적인 내용을 정하도록 하고는 있지만, 당장 법률상 규정만 놓고 보면 재개발도 이주비 제안이 불가능하다. 계약업무 처리기준의 내용과 충돌된다고 하더라도 상위법인 도시정비법을 우선적으로 따르게 된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이주비 마련을 위한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정비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사업비용으로 인정해 이주비 제안을 풀어주거나, 정비사업에 한해 LTV 등 대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정부는 이주비 금융비용 등을 사업비로 인정해 분양가상한제 가산비에 포함하는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즉 정부에서도 이주비 금융비용이 정비사업의 필수 사업비용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정부의 250만호 이상 주택공급이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비사업의 대출규제 완화가 수반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주비에 대한 무상 지원은 금지하되, 조합이 금융비용을 내는 한도 내에서 추가 이주비 지급은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주택정비사업조합협회 엄정진 정책기획실장은 “강력한 대출 규제가 시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시공자의 이주비 지원까지 금지하게 되면 이주기간이 장기화되거나, 사업 자체가 어려워질 가능성도 있다”며 “이주 현장에 한해 대출 규제를 완화하거나, 시공자나 공공기관이 추가이주비를 제공하는 등의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심민규 기자 smk@ar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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