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법원은 구 도시정비법의 적용을 받는 총회에 대리인이 출석한 경우 ‘100분의 20 이상 직접 출석’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 조합설립인가처분이 무효라고 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구법에 따르더라도 ‘직접 출석’에는 대리인이 출석하여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도 포함된다고 하였다(대법원 2022.5.12. 선고 2021두56350 판결, 이하 ‘대상판결’).

구법이 ‘직접’을 오로지 본인의 출석만으로 한정하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단지 서면출석과 구별되는 참석 방법으로 직접출석을 정한 것이므로 조합원이 필요에 따라 대리인을 통한 참석을 하지 못하도록 할 이유는 없었다. 대법원이 상식적인 결론을 내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위 2021두56350 판결은 직접출석 문제 외에도 대리인 명의 조합설립동의서의 유효성에 대한 쟁점을 다루었다. 법인인 토지등소유자가 특정 개인에게 정비사업 관련 업무 일체를 위임한다는 취지로 위임장 및 첨부서류(이사회의사록, 법인인감증명서 등)를 교부하였고, 해당인은 대리인 표시 없이 법인이 아닌 자신 개인 명의의 조합설립동의서를 제출하였던 것이 문제가 되었다. 다만 동의서에는 위임장 및 법인인감증명서 등이 첨부되어 있었다.

이와 같은 조합설립동의서의 효력에 관하여 대법원은 “토지등소유자인 법인의 의사에 부합할 여지가 있다”는 미묘한 판단을 하였다. 나아가 사실관계를 정확히 조사하여야 비로소 동의서의 유효성 여부가 밝혀질 수 있으므로 설령 행정청이 동의자 수를 오인하였다고 하더라도 중대·명백한 하자는 아니어서 조합설립인가처분이 무효가 아니라는 것이다.

대상 판결 취지는 서면동의서에 ‘법정사항(대리인 표시)이 흠결되어 있긴 하나’, ‘본인의 의사에 부합한다면’ 동의가 유효하다는 것처럼 보인다. 기존 판례는 조합설립동의는 조합설립 후 정관상 대리행사가 제한되는 동의와는 달리 대리행사가 가능함을 전제하여, 대리인 표시 없이 조합설립동의서를 제출하였더라도 위임장을 함께 제출하여 대리인으로서 동의한다는 뜻을 명시적으로 밝혔다면 유효한 동의로 볼 수 있다고 하였다(대전고등법원 2010누2874 판결, 대법원 2011두20680 판결로 확정).

그런데 ‘본인의 의사에 부합할 여지가 있다’거나 ‘당해 토지등소유자를 동의자 수에서 제외할지 여부는 사실관계를 정확히 조사하여야 비로소 밝혀진다’는 대상 판결 취지는 마치 위임장이 제출되었더라도 ‘본인’의 실제 의사에 따라 동의서의 유효성을 달리 판단할 수 있다는 것처럼 읽힐 수 있다.

대리인 명의로 제출하였더라도 위임장을 함께 제출하여 대리행사라는 점을 확실히 표시하였으므로 유효하다는 것이 기존 판례의 입장인데, 이처럼 대리행위로서 유효하다고 전제한다면 대리인이 아닌 본인의 의사에 부합하는지 여부가 조합설립동의의 유효성의 기준이 될 수는 없지 않을까? 대상 판결을 두고 행정청이 위임장 등을 검증하여 (대리권 수여가) 유효하다면 조합설립동의가 결과적으로 본인의 의사에 부합하게 된다는 취지로까지 나아가 해석할 수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대상 판결은 조합설립동의서 상 대리인임을 표시하지 않은 하자가 있다 하더라도 중대·명백하지 않아 무효는 아니라는 취지인 관계로 ‘본인 의사에의 부합’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파기환송심을 지켜 볼 필요는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결국 기존 판례와 같이 대리인 표시를 하지 않았더라도 위임장 등이 첨부되어 대리인으로서 제출하였다는 점을 조합 또는 행정청이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일응 유효한 동의서로 보는 것이 간명하고 타당해 보인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위클리한국주택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