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건설사들의 정비사업·리모델링 수주 실적은 납부 규모에 따라 순위가 갈렸다. 입찰보증금을 납부한 규모가 상당할수록 수주실적도 높았던 셈이다.
본지가 상반기 건설사들의 정비사업과 리모델링 수주현황을 조사한 결과 현재(2022.05.20. 기준) 실적 TOP3 건설사 중 1위는 현대건설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는 수주 경쟁에서 철옹성과 같은 실적으로 ‘수주킹’ 자리 굳히기에 나섰다. 벌써 5조원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올초 대구 남구 봉덕1동 재개발을 시작으로 경기 과천주공8·9단지와 전남 광주 광천동 등 6곳의 사업장에서 수주고를 올렸다. 실적은 약 4조9,585억원 규모로 파악됐다.
이어 GS건설이 뒤를 달리고 있다. GS는 서울 용산구 한강맨션 재건축사업장에 첫 수주 깃발을 꽂은 이후 영등포구 신길13구역, 부산 금정구 구서5구역 재건축 등의 사업장에서 시공권을 확보했다. 누적수주액은 약 1조8,919억원 수준이다.
다음 순위에는 롯데건설이 이름을 올렸다. 대표적인 사업장은 서울 성동구 성수1구역 재건축과 강북구 미아3구역 재개발 등이다. 아울러 서울 강동구 선사현대도 현대건설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시공권을 따냈다. 현재까지 누적된 실적은 약 1조3,878억원 규모다.
건설사들의 수주실적이 높을수록 입찰보증금을 납부한 규모도 상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먼저 현대가 6개 사업장 수주를 위해 납부한 입찰보증금은 약 2,075억원이다. 전체 수주실적의 약 4% 수준이다. 이 가운데 구역면적이 가장 넓고 건립규모가 상당한 광천동의 입찰보증금액이 무려 900억원으로 가장 높았다. 이곳은 구역면적이 약 25만4,466㎡에 달한다. 재개발을 통해 최고 33층 높이의 아파트 5,006가구 등이 들어선다. 이 외에 과천주공8·9단지와 장대B구역의 경우 입찰보증금은 각각 400억원, 선사현대 250억원, 봉덕1동 150억원, 이촌강촌 100억원 순으로 책정됐다. 이중 선사현대의 경우 현대와 롯데가 손을 잡고 시공자로 선정된 가운데 보증금은 각 사가 지분율 50%로 나눠 125억원씩을 납부한 것으로 예상된다.
GS건설은 5개 사업장을 수주하면서 입찰보증금 1,850억원을 납부했다. 가장 높은 입찰보증금을 납부한 사업장은 한강맨션으로 1,000억원이다. 이 단지는 구역면적이 약 8만4,262㎡이다. 최고 35층 높이의 아파트 1,441가구 등을 짓는 재건축사업을 추진 중이다. 구역면적이 더 넓은 불광5구역의 경우 입찰보증금은 한강맨션보다 더 낮은 600억원이 책정됐다. 건립규모는 한강맨션보다 적다. 조합은 11만7,939㎡ 규모의 면적에 재개발을 통해 최고 28층 높이의 아파트 805가구 등을 짓겠다는 구상이다.
롯데건설 역시 6개 사업장을 수주하면서 1,000억원에 육박하는 입찰보증금을 납부했다. 미아3구역의 경우 가장 높은 300억원이 책정됐고, 성수1구역과 봉천1-1구역 등의 사업장에서 약 973억원의 입찰보증금을 납부한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업계에서는 과도한 입찰보증금이 건설사들의 원활한 수주 경쟁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실상 막대한 보증금을 감당할 수 있는 특정 건설사들만 입찰에 참여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과도한 입찰보증금에 부담을 느낀 건설사들의 참여가 저조해지면서 보증금을 납부할 수 있는 특정 건설사만 입찰에 참여하고, 결국은 수의계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수주실적 TOP3 건설사가 시공권을 확보를 위해 17곳의 사업장에서 납부한 입찰보증금은 무려 4,898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다. 각 사업장당 평균 약 288억원 수준으로, 경쟁이 이뤄진 곳은 단 2곳에 불과하다. 실적 1위인 현대의 경우 수주한 사업장들은 모두 수의계약으로 이뤄졌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 정부가 현설보증금을 금지시키면서 업계에 논란이 불거졌던 이른바 ‘짬짜미 의혹’에 대한 불씨 제거에 나선 바 있다”며 “이후 현설보증금은 사라졌지만 조합이 막대한 입찰보증금을 책정하면서 여력이 있는 일부 대형사만 참여 가능한 구조가 형성됐고, 경쟁 없는 수의계약이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혁기 기자 lee@ar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