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조합원 발의에 의한 조합장 해임총회 열풍은 바야흐로 전국적 현상이 된 듯하다. 기존 집행부가 눈에 띄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아도 해임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해임 사유에 관한 한 법원의 입장은 철저한 무관심에 가깝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해임가결을 선포한 쪽의 행보는 곧장 조합사무실 접수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대한민국 권력의 상징이 청와대이듯 조합 권력의 상징은 조합사무실이기 때문이다. 해임총회 가결 이후 해임 효력을 다투는 소송이 한동안 이어지기 일쑤여서 조합사무실 접수는 가시적 효과 측면에서 해임의결에 버금가는 의미가 있다. 조합사무실 접수를 위해 물리적 충돌을 불사하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조합사무실 접수 과정에서 잠금장치를 뜯고 들어가는 상황도 빈번하게 벌어진다. 이 경우 잠금장치를 풀고 진입한 행위의 가벌성에 관해서는 조합사무실이 단순히 개인의 점유가 아닌 법인의 점유라는 특수성을 깊이 고민하여야 한다.

조합장은 조합의 점유를 실현하기 위해 조합의 대표자이자 관리자로서 관리권을 행사한다. 누군가 조합사무실에 무단으로 침입한다면 형사적 관점에서 침해의 대상은 조합의 점유이거나 대표자의 관리권으로 파악하는 것이 온당하다.

대법원은 “건조물 침입죄는 건조물의 사실상 평온을 보호법익으로 하고 있으므로 건조물 관리자의 의사에 반하여 건조물에 침입함으로써 성립한다”고 판시한다.

따라서 조합사무실의 잠금장치를 열고 진입한 행위의 형사책임을 논하기 위해서는 선행적으로 조합사무실의 관리자가 누구인지, 잠금장치를 열고 진입한 행위가 그 관리자의 의사에 반하는 것인지를 밝혀야 한다.

업무집행자로서 조합을 유일하게 대표하는 조합장이 조합사무실의 관리권자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해임결의 이후 조합의 대표권과 조합사무실 관리권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임원 전원이 해임되었다면 정관에 전원 해임에 대비한 규정을 두지 않은 한 대표권과 관리권의 사실적 공백이 생기지만 직무대행이 가능한 상황이라면 그 직무대행자가 조합 업무집행권과 대표권을 이어받고 조합의 조합사무실 점유도 직무대행자의 관리권을 통하여 실현된다.

조합사무실의 잠금장치를 열 수 있는 수단이 관리자에게 없다면 열쇠가 수중에 들어올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할까. 열쇠공이라도 불러 잠금장치를 열고 들어갈 수 있다고 보는 게 상식적이다.

이에 대해 해임된 조합장이 여전히 조합사무실의 관리권을 행사하고 있으니 직무대행자 역시 해임된 조합장의 의사에 반하여 조합사무실에 진입할 수 없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해임된 조합장은 해임 즉시 조합 대표권, 집행권, 조합사무실 관리권을 모두 상실한다. 조합사무실 열쇠 분실 상태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이 경우 정당하게 열쇠공을 불러 조합사무실의 잠금장치를 풀고 진입할 수 있는 사람은 해임 조합장이 아니라 직무대행자로 보아야 한다. 정당한 관리권자의 업무영역이기 때문이다.

해임된 조합장이 열쇠를 가지고 있는 경우는 열쇠 분실상황과 다르다고 강변할지도 모르나 해임된 조합장이 열쇠를 내어놓지 않는 상황이나 열쇠가 분실된 상황이나 관리권 행사에 물리적 방해를 받고 있다는 측면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대법원 판례 취지에 따르더라도 건조물 침입죄의 성부는 정당한 관리권자의 관리 의사에 반하는 것인지 아닌지에 달려있다.

요컨대 열쇠 분실이든 해임 조합장 협조 거부든 조합의 조합사무실 점유는 정당한 관리자를 통하여 실현되어야 한다. 직무대행자가 잠금장치를 열고 조합사무실에 진입하는 행위는 구체적 관리방법의 변경(잠금장치 교체)으로 정상적인 관리권 행사일 뿐, 손괴나 건조물 침입 등 처벌규정으로 다스려야 할 범죄행위로 속단해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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