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이나 대의원을 선임(개별 조합의 선거관리규정상 연임이나 보궐선임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하는 ‘선거안건’은 업무 특성상 반드시 선관위를 구성해야 한다. 선거업무가 선관위를 통해 이루어지도록 한 취지는 선거에 직접 이해관계를 갖는 기존 집행부의 관여를 최소화함으로써 선거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도모하려는 것이다.

선관위 구성은 대부분 조합이 대의원회 의결을 거치도록 정해 놓았기에 법정 대의원 수 부족에 따른 대의원회 불완전성 이슈와 자주 맞물리게 된다. 법정 대의원 수가 부족하면 대의원회 기능이 마비되고 대의원회를 통한 선관위 구성도 사실상 불가능해진다는 얘기다.

법정 대의원 수에 문제가 없더라도 대의원들이 대의원회 소집에 응하지 않거나 안건을 부결시킴으로써 선관위 구성에 협조하지 않는 경우도 잦다. 특히 임원 해임 후 새로운 집행부 구성 국면에서 해임을 수용하지 않는 대의원들이 다수를 점하고 있을 때 흔히 연출되는 상황이다.

법정 대의원 수 부족이든 대의원들의 비협조든 정상적인 대의원회 의결을 통한 선관위 구성이 불가하다면 조합으로서는 비상조치를 강구 할 수밖에 없다. 이사회에서 선관위를 구성하고 총회에서 추인받는 방식이 그 전형이다.

문제는 비상수단을 동원해 임원선임 총회를 소집하려는 경우 법원이 개최금지 가처분을 인용하는 사례가 잦아지고 있다는 것. 최근 강북 재건축 구역의 가처분 인용 결정은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어 총회를 통한 선관위 추인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우선 이사회를 통한 선관위 구성은 정관이나 선거관리규정에 위반되고 선관위 구성은 선거의 공정성이나 선거결과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 둘째 총회를 통한 추인방식으로 대의원회를 의도적으로 우회하는 것은 총회와 별도로 대의원회를 설치해 의결사항을 구분한 정관규정을 잠탈할 우려가 있어 부당하다는 것.

정관이나 선거관리규정이 너무 쉽게 그리고 빈번히 무시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재판부의 정책적 고민이 뚜렷이 읽힌다. 본안 소송과 달리 단시일 내에 신속히 결정을 내려야 하는 재판부의 고충도 느껴진다.

그럼에도 진한 아쉬움이 드는 것은 선임결의 유효성에 관한 대법원의 확고한 법리와 괴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선거무효에 해당하려면 단순히 법령 위반만으로는 부족하며, 그 위반으로 인해 선거의 공정성이 침해되어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고 반복 선언해 왔다.

선관위 구성이 규정을 위반했다는 것만으로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는 것은 법령 위반만 있다면 공정성이 어떻게, 얼마나 침해되었는지에 관한 아무런 증명이나 소명이 없어도 선거가 무효라는 새로운 법리를 채택하는 것과 진배없다. 재판부는 선관위 구성에 관한 규정이 공정성과 직결된다고 부연하지만 공정성과 무관한 선거관리규정이 있기나 할까. 규정 위반으로 구성된 선관위가 반드시 불공정하게 업무를 수행할 것이라고 속단할 수 있을까.

총회와 대의원회를 별도로 설치하고 업무를 구분해놓았다는 지적도 정책적 이유라면 모를까 법리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대의원회가 가지는 모든 권한의 원천은 조합원 총회’라는 대명제 때문이다. 대의원회 권한 사항을 대체하는 총회결의가 무효라는 법리는 성립할 수 있을까. 대의원회를 거치지 않은 선관위 구성이 총회를 원천 봉쇄할 타당한 근거가 될 수 있을까.

변론주의가 지배하는 민사법원의 판단은 당사자의 주장과 입증에 의해 형성된다. 향후 되풀이될 같은 쟁점의 사안에서는 좀 더 역량 있는 법률전문가들의 참여와 치밀한 논증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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