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홍영주 기자]
[그래픽=홍영주 기자]

최근 아파트 고급화 바람이 불면서 공사비 인상폭을 두고 분쟁이 발생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건설사들은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상승 등으로 공사비 증액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지만, 조합에서는 최소한의 인상을 요구하면서 팽팽한 줄다리기를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은 시공자 계약 해지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공사비 분쟁이 시공자 해지로 이어질 경우 건설사와 조합이 모두 큰 피해를 받을 수 있는 만큼 양보를 통한 협의가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아파트 고급화 바람에 공사비 인상 등 협상 과정서 갈등 늘어… 계약 해지 땐 조합-건설사 모두 피해


조합과 시공자간의 공사비 갈등은 정비사업의 시작된 이후로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있다. 조합은 정비사업을 통해 개발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인 만큼 지출을 최소화해야 한다. 따라서 조합의 지출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공사비를 줄이는 것은 개발이익과 직결되는 문제다.

반면 시공자는 공사비 인상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는 입장이다. 정비사업 특성상 실제 착공시기까지 상당기간이 지나야 하는 만큼 물가상승과 인건비 상승으로 적정 공사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최근에는 고급 마감재를 요구하는 사례가 늘면서 공사 원가가 상승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조합과 시공자간의 공사비 갈등이 시공권 해지로 이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서울 방배6구역과 신반포15차, 대전 장대B구역, 부산 부곡2구역, 서금사5구역 등이 공사비 협상 과정에서 기존 시공자를 해지하고, 새로운 시공자를 선정했다.

문제는 시공자를 교체하더라도 시공자 지위 여부와 손해배상 등에 대한 법적 분쟁이 발생하면서 피해가 우려된다는 점이다. 일부 구역에서는 새로운 시공자를 선정했음에도 법원에서 기존 시공자에 대한 지위를 인정한 사례가 있다. 또 시공자의 귀책사유가 아닌 경우에는 조합이 기존 시공자의 기대이익의 일정 부분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공사 중지 가처분이나 판결이 떨어질 경우에는 공사 지연에 따른 추가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건설사 입장에서도 시공계약이 해지될 경우 금전적인 피해는 물론 회사 이미지가 실추될 수밖에 없다. 건설사에게 계약해지의 귀책사유가 없으면 충분한 배상액을 기대할 수 있지만, 사업비 지급지연 등 귀책사유가 없다면 실질적인 배상액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부동산원 공사비 검증, 공신력 높은 검증 결과 장점… 최대 1년 이상 검증기간 필요해 사업지연 우려


이에 따라 일부 조합에서는 한국부동산원의 정비사업 공사비 검증 제도를 활용하기도 한다. 공사비 검증제도는 공사비를 일정비율 이상 증액하려는 경우 사업시행자가 검증기관에 의뢰해 공사비의 적정성을 검증 받는 제도다. 공공기관이 설계도면을 검토해 공사비 인상 여부에 대한 검증을 진행하는 만큼 높은 공신력을 가지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공사비 검증 결과를 받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단점도 있다. 우선 검증 신청을 위한 서류 준비 과정이 만만치 않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검증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신청서와 공사비 목록, 도급계약서, 시공자 입찰 관련 서류, 설계도 및 시방서, 공사비 내역서, 물량산출서 등을 제출해야 한다.

따라서 조합에서는 실제 공사비 산출이 가능한 공사도면을 작성해 시공자에게 전달해야 하고, 시공자는 해당 도면을 바탕으로 적산 업무를 진행해야 한다. 해당 준비 작업을 진행하는 기간만도 수개월이 걸린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검증 신청에 들어간 이후에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현행법상 전체 또는 증액 공사비가 1,000억원 이상인 경우에는 접수일로부터 75일 이내에 검증 결과를 통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서류 미비나 추가 자료 필요에 따른 보완 기간은 검증기간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실제 검증기간은 더 늘어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아가 공사비 10% 이상이 증가하지 않은 경우에는 토지등소유자나 조합원 20% 이상이 검증을 의뢰해야 하기 때문에 준비기간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공사비 상승에 따른 의무 검증 대상이 아닌 협상을 위한 검증은 착공 지연 등 사업기간 증가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성남의 한 재개발구역은 시공자가 제시한 공사비를 수용해 일단 도급계약을 체결하고, 향후 계약금액과 한국부동산원의 검증금액 중에서 낮은 금액으로 공사비를 정하는 조건으로 협의를 완료했다. 최근 공사비 검증 요청이 늘어나면서 검증기간이 최대 1년 가까이 걸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이다.

따라서 전문가는 조합과 시공자가 공사비와 조건을 투명하게 공개해 협상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조합이 공사 요구 조건과 마감 수준 등을 구체적으로 제안하고, 시공자도 공사비 인상 요인에 대한 투명한 제안을 통해 적극적인 협의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주택정비사업조합협회 엄정진 기획실장은 “그동안 협회가 공사비 분쟁 조정을 진행한 결과 대부분의 구역들은 구체적인 내용이 없이 공사비 협상에 나섰던 것에서 갈등이 시작됐다”며 “조합과 시공자가 원하는 방안과 양보할 수 있는 부분을 하나씩 이끌어내는 것이 공사비 협상 과정에서 분쟁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혁기 기자 lee@arunews.com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위클리한국주택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