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년 사이에 공사도급계약서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시공자 쪽이 마련한 초안에 “민법 제673조를 적용하지 않기로 한다”는 규정을 거의 예외 없이 보게 된다.

계약 당사자는 상대방에게 잘못이 없는 경우에는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제한다고 주장하지 못한다. ‘계약은 지켜야 한다’는 계약의 구속력이다. 이 673조는 수급인에게 귀책사유가 없더라도 도급인이 일방적으로 도급계약의 해제할 수 있도록 한다. 이 경우 수급인은 도급계약 이행을 위해 비용을 지출하거나, 도급계약이 끝까지 이행되었더라면 얻을 수 있었던 이익을 못 얻게 되는 손해를 입게 된다.

673조는 도급인에게 해제의 자유를 주는 대신 수급인의 이러한 손해를 배상하도록 규정한다. 도급인과 수급인의 이해관계를 이렇게 조정하는 방법으로 계약의 구속력에서 도급인을 해방시켜 준다.

최근 민법 673조가 정비사업 현장의 뜨거운 쟁점이다. 도시정비법에서 규정된 총회 결의사항인지, 어떤 요건을 갖추어 총회결의가 되어야 하는지, 그 요건이 현실성은 있는지, 정비사업 현장에 미칠 파장은 어떠한지. 등등의 과제를 낳는 쟁점이다.

도급인인 조합이 시공자의 귀책사유를 이유로 도급계약의 해제를 주장하고 나서는 흔한 장면. 착공 시점에 시공자는 조합을 상대로 공사면적의 증가, 물가상승, 기타 계약상의 이유로 공사지를 다시 정하자고 협의를 요청한다. 도급계약서에 흔히 들어가는 규정에 따르면 조합은 성실히 협의에 응하여야 한다. 성실히 응하지 않으면 시공자가 도급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협의기간은 수급인의 이행지체 기간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조합 입장에서는 시공자의 공사비 증액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 시공자는 협의 불응 또는 공사비 증액 불응을 이유로 착공을 지연한다. 결국 조합은 시공자에게 착공 지연 등의 귀책사유가 있다고 주장하며 도급계약을 해제한다. 물론 조합원 총회를 거친다.

시공자는 “조합의 계약해제가 부적법하므로 여전히 자신이 시공자의 지위에 있다”는 내용으로 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한다. 조합은 시공자의 귀책사유로 계약이 해제되었다. 그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민법 673조에 의해 계약이 해제되었다고 주장한다.

최근에 보도된 고등법원 판결이 난 사례도 대체로 이런 사건으로 보인다. 그 판결의 결론만 보자면 시공자가 지하 4층 공사를 무상으로 시공해 줄 듯 한 오해를 살 것처럼 홍보를 한 잘못은 있지만 지하 4층 연면적이 늘어났으니 시공자의 공사비 증액 요구가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 기타 이유로도 시공자에게 귀책사유가 없다.

조합이 673조에 의해 임의해제를 하기 위해서는 그 선행 절차로서 해제 및 해제와 일체를 이루는 손해배상에 관하여 총회 의결을 거쳐야 함에도 조합은 총회 결의를 거친 바 없다. 조합의 이 해제 주장도 이유가 없다.

시공자에게 귀책사유가 있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에 대해서는 소송기록을 보지 않은 이상 뭐라고 논평하기 어렵다. 반면에 총회 결의가 필요하다는 부분은 법리적, 현실적 문제이므로 논평을 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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