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주거이전비는 재건축을 제외한 정비사업조합에게 늘 골칫거리였다.

정작 정비사업의 근거법인 도시정비법은 주거이전비 지급을 직접 규율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조합은 막대한 재원을 마련하여 주거이전비를 지급하여야만 한다. 


지급대상도 대단히 광범위하다. 당초 실무적으로는 주거세입자에 국한되는 것으로 파악했지만 법원은 현금청산대상자도 지급대상에서 제외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추세에 용기백배한 일부 용감한 조합원들은 자신들도 주거이전비 지급 대상에서 제외될 이유가 없다며 조합을 상대로 주거이전비 지급청구소를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조합원들이 제기한 소송의 결과는 모두들 아시다시피 기각. 조합원은 사업시행자에 준하는 지위에 있는 자이기에 조합을 상대로 주거이전비를 청구할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간명한 논거였다(각종 자료의 열람·등사 청구에 있어 주민번호를 제외한 모든 개인정보를 공개하도록 한 도시정비법 개정의 이론적 기반 역시 조합원이 사업시행자에 준하는 지위에 있다는 것이다).


사실 주거이전비 지급대상이 되는 세입자인지 아닌지를 가르는 기준이 무엇인지 확정하는데에도 많은 혼란이 있었다. 


서울행정법원의 한 재판부는 “공익사업법 시행규칙에서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사업인정고시일을 배제하고 여러 고시·공고일 중 비교적 초기단계에서 이뤄지는 정비구역지정 공람·공고일이 기준일에 해당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문언의 의미 한계를 벗어난 지나친 축소해석이며 주택세입자들에 대한 사회보장을 도모하고 조기 이주를 장려해 사업추진을 원활하게 하려는 당초의 입법취지를 퇴색케할 여지가 있기에 사업시행인가일이 기준일”이라고 판단했다. 


반면 같은 법원의 다른 재판부는 “구역지정에 관한 공람·공고가 있은 후 정비계획이 고시되면 재개발이 시행된다는 것이 객관화되고 일반인들이 알 수 있는 상태에 이르기에 공람·공고 후 이주해 오는 세입자를 지급 대상자로 인정하는 것은 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범위를 넘는 것이기에 구역지정공람공고일이 기준일”이라고 판단했다. 


1심에서의 엇갈린 판단은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에서도 그대로 이어졌고 결국 대법원에 가서야 구역지정공람공고일이 주거이전비 대상여부를 가르는 기준임이 확인되었다. 


도시정비법 역시 대법원 판결과 동일하게 기준일을 구역지정공람·공고일로 하는 명문규정을 설치하였다. 


대법원 판결과 도시정비법 개정을 통해 기준일을 둘러싼 커다란 혼란은 일단락되었고, 주거이전비 포기특약이 유효한 것이냐(유효하지 않다), 주거이전비 지급대상이 되었더라도 실제 지급받기 위해서는 이후 일정 시점까지 거주를 계속하여야 하는 것이냐(거주요건은 필요치 않다) 등의 소소한 논의도 있었으나 역시 말끔히 정리되었다. 


그러던 차에 대법원 판결하나가 나오면서 작은 혼란을 겪게 된다. 


판결내용 중 “도시정비법에 의한 정비사업의 시행에 공익사업법이 준용될 경우에는 도시정비법에 의한 사업시행인가의 고시가 있는 때에 공익사업법에서 규정한 사업인정 및 고시가 있은 것으로 간주된다”는 표현으로 인해 일각에서 주거이전비 기준일이 사업시행인가고시일로 바뀐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품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해당 판결은 보상의 내용이 조합의 사업시행인가고시일에 시행되던 공익사업법 시행규칙의 규정에 따라 결정된다는 취지였을 뿐 주거이전비 기준일 자체를 달리 판단한 사안이 아니었다. 


늘 사업성 제고의 강박에 시달리는 조합으로서는 주거이전비 문제가 달가울 리 없다. 


그러나 주거이전비는 수용권이라는 강력한 무기의 반대급부임을 상기하여야 한다. 피할 수 없을 바엔 기꺼이 받아들이는 편이 정신건강에 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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