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사업 조합에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43조제4항에 따른 해임총회는 빈번하게 개최된다. 특히 도시정비법은 발의요건도 완화하고 해임총회의 소집권한을 즉각적으로 발의자 대표에게 부여하는 특례를 제공한다. 임원 해임을 위한 사유도 필요하지 않다. 이에 따라 해임총회가 소집권자의 의도에 따라 성공적으로 가결되는 사례가 빈번하다.

임원에 대한 해임결의가 있으면, 그 결의 즉시 해임의 효력이 발생하고, 해임총회를 주도한 자들은 연이어 궐위된 임원을 보궐선임하기 위한 총회를 개최하게 된다. 이 경우 해임된 임원은 자신의 해임으로 인해 개최되는 보궐선거에 입후보할 수 있을까?

심정적으로는 보궐선거의 단초를 제공한 자가 또 다시 보궐선거에 입후보하는 행위가 부당해보일 수 있다.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사퇴한 선출직 공무원이 그로 인한 보궐선거에 다시 입후보하는 일을 상상할 수 없기에 이러한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조합원의 피선거권은 심정적인 부당함으로 제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법령이나 정관상 근거가 있어야만 제한할 수 있다.

그런데 도시정비법령과 일반적인 조합정관에는 해임된 임원이 그로 인한 보궐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는 규정이 없다. 선출직 공무원에 대한 규정 중 도시정비법 제43조제4항의 해임총회와 그나마 가장 근접한 개념이라 볼 수 있는 주민소환제(지방자치법 제20조)의 경우 주민소환이 확정되면 해당 보궐선거에 후보자로 등록할 수 없도록 법률로서 규정(주민소환에 관한 법률 제23조제2항)한 것과 구별된다.

도시정비법이 위와 같이 해임된 임원의 보궐선거 출마 금지규정을 두지 않은 것은 선출직 공무원과 달리, 조합임원과 조합의 관계를 민법상 위임관계로 보기 때문이다. 법원은 조합원 의사에 따라 임원과의 위임관계를 자유롭게 해지할 수 있다고 일관되게 판시하는데, 해임에 사유를 요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와 같이 조합원들의 의사에 따라 위임관계의 해지가 자유롭게 가능하다면, 조합원들의 의사에 따라 위임관계의 재설정도 자유롭다고 보아야 한다. 이로 인해 법률이 해임된 임원의 보궐선거 출마를 막지 않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주민소환의 경우 공적으로 관리되는 선거관리위원회 등에서 소환절차를 엄격하게 관리하므로(주민소환에 관한 법률 제2조) 주민소환 결과에 대한 신뢰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도시정비법상 해임총회는 발의자대표가 직접 총회를 소집하고 직접 서면결의서를 징구하여 해임안건을 가결시킨다는 점에서, 공정성을 확보할 제3의 감독기구가 존재하지 않는다. 즉, 해임되었다는 사정만으로 보궐선거에 출마하지 못한다면 해임 당사자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억울할 일이 많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특정임원과 조합의 관계가 신뢰의 파탄으로 정당하게 해지되었다면, 해임된 임원은 그로 인한 보궐선거에 다시 출마하더라도 당선될 일이 없을 것이다.

해임된 임원이 그로 인한 보궐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쪽은 보통은 해임총회를 소집한 자일 것이다. 소집권자가 조합원들로부터 해임의사를 정당하게 수령했다면, 이어지는 보궐선거에 해임된 임원이 다시 출마했더라도 겁이 날 이유가 없다.

실제로 어느 조합에서는 해임총회 소집권자 A가 조합장 B를 해임시킨 후 직무대행자를 내세워 보궐선거를 소집하였는데, B가 입후보등록을 하자 해임된 임원의 보궐선거 출마가 부당하다며 선관위 결의를 통해 B의 입후보등록을 취소했다. 그러나, B가 신청한 총회개최금지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어, 결국에는 B의 출마를 막지 못하였다(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2021카합).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위클리한국주택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