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홍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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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청산자에게 사업비용을 공제하기 위해서는 정관에 구체적인 기준이 정해져있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조합 정관에 단순히 ‘공제할 수 있다’는 취지의 추상적인 조항만으로는 사업비용을 부담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 제3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지난달 29일 긴등마을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이 상고한 ‘현금청산청구의 소’에서 원고의 승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판결문에 따르면 조합원이었던 A씨 등은 지난 2012년 12월 조합에게 분양신청을 했지만, 2014년 2월부터 진행된 분양계약 체결 기간에 계약을 체결하지 않아 현금청산 대상자가 됐다. 이보다 앞서 2013년 5월 개최된 정기총회에서는 분양계약을 체결하지 않는 경우 ‘그동안 기투입된 사업비용’을 공제한 후 현금청산금을 지급받는 내용의 정관 개정이 의결됐다.

이후 2014년 6월 A씨 등이 현금청산금의 지급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자, 조합은 정관 조항에 의해 조합원의 지위를 상실할 때까지 발생한 정비사업비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정비사업비에 종전자산의 출자비율을 곱한 금액을 ‘정비사업비 부담금’으로 책정해 현금청산금에서 공제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A씨 등은 처음부터 현금청산 대상자에게 정비사업비를 부과할 것을 예정해 사업을 추진하지 않았고, 정비사업비에 대한 부담 기준 등이 정해져 있지 않아 공제해서는 안 된다고 맞섰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A씨 등의 주장을 받아들여 정비사업비를 공제할 수 없다는 서울고등법원의 원심 판결을 인용했다.

재판부는 “현금청산 대상자가 조합원의 지위를 상실하기 전까지 발생한 조합의 정비사업비 중 일정 부분을 분담해야 한다는 취지를 조합 정관 등으로 미리 정한 경우에 한해 조합이 이를 청산하거나 별도로 반환을 구할 수 있다”면서도 “단순히 현금청산 대상자가 받을 현금청산금에서 사업비용 등을 공제하고 청산할 수 있다는 추상적인 정관 조항만으로는 현금청산금에서 사업비용을 공제하는 방식으로 사업비용을 부담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즉 재판부는 정관 또는 정관에서 지정하는 방식으로 현금청산 대상자가 부담하게 될 비용의 발생 근거, 분담 기준과 내역, 범위 등을 구체적으로 규정해야 현금청산금에서 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조합의 정관에는 현금청산 대상자가 부담해야 할 비용 항목과 부담 기준 등을 합리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며 “정관 조항에 구체적인 계산 또는 예측 가능한 정비사업비 분담 기준과 비율이 정해져 있지 않고, 현금청산 대상자별 분담내역을 특정할 수 있는 총회 결의를 거치지도 않았으므로 원고에 대해 정비사업비용을 공제할 수 없다고 판단한 원심의 결론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법률사무소 국토의 김조영 대표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현금청산 대상자가 된 조합원이 조합 탈퇴 전에 자신이 부담해야 할 정비사업비를 특정할 수 있는지가 주요 쟁점이었다”며 “조합이 현금청산자의 정비사업비를 공제하기 위해서는 미리 정관에 구체적인 기준을 정해야 한다는 의미가 있는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심민규 기자 smk@ar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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