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정비법이 조합원 10분의 1 발의만 얻으면 발의자 대표가 직접 해임총회를 소집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빈번히 임원해임 상황이 연출된다.

해임총회에 따른 법률적 이슈는 다양하지만 오늘은 해임결의 이후 조합사무실 점유를 둘러싼 살풍경을 잠시 들여다보자.

해임총회를 주도하는 측이 해임안건만 다루는 경우는 드물고 통상 직무정지 안건도 함께 상정한다.

도시정비법이 발의자 대표에게 총회소집권을 명시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해임’이기에 한때 ‘직무정지’ 안건을 함께 상정하면 잘못이라는 일부 법원의 판단도 있었으나 현재는 해임안건과 직무정지 안건을 함께 다룰 수 있다는 데 별 이견이 없다.

해임과 밀접하고 해임목적 달성을 위해 필수적인 직무정지 역시 관련 안건으로 상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일부 재판부는 해임결의만으로 당연히 직무가 정지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지만 해임된 임원도 별도의 직무정지 결의가 필요한 것으로 규정하는 정관규정을 지나치게 경시한 것이어서 선뜻 수긍하기 어렵다).

어쨌든 현재는 해임안건과 직무정지 건이 함께 상정되어 가결되는 것이 보편적이고 그에 따라 총회 당일 해임을 가결한 측이 조합사무실을 접수하기 위해 물리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잦아졌다. 조합사무실이 곧 조합의 실체로 관념되고 조합사무실을 차지하는 세력이 정당한 조합집행부라는 상식적 차원의 상징성 때문에 촌각을 다투어 조합사무실을 점거하려는 것이다.

해임되는 기존 집행부 역시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해임이 가결될 경우를 대비해 이중 삼중 철저하게 잠금장치를 해놓거나 경호 인력을 조합사무실 내, 외에 배치해 해임결의 이후 조합사무실 침탈 상황에 대비한다. 해임결의의 적법성을 다투는 소송이 진행되는 수개월 내내 기존 집행부가 조합사무실을 철통같이 방어하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 느슨해진 경계를 틈타 해임을 주도한 측에서 조합사무실을 차지하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해임을 주도한 측이 조합사무실을 점거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기존 집행부가 설치해놓은 자물쇠를 뜯어내고 진입하게 되는데, 이 때문에 흔히 손괴죄나 건조물침입죄, 업무방해죄 등으로 고소를 당하게 된다.

임원 전원이 해임되어 당장 직무대행자가 없는 상황에서 발의자 대표 등 일부 조합원들이 조합사무실 점거를 감행한 경우라면, 형식적으로는 손괴, 건조물침입, 업무방해 등 범죄의 성립을 긍정하기가 쉽다. 조합원들이 직접 조합사무실의 관리권을 가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라도 실제 처벌례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집행부가 공백인 상황에서 조합사무실을 접수해 조합업무를 사실상 관리하더라도 조합에 큰 손실을 끼치는 것으로 보기 어렵고 궁극적으로 조합의 자산은 곧 조합원의 자산으로도 볼 수 있으니 실질적 가벌성이 크지 않다는 점이 수사 과정에서 고려되는 것이다.

만약 직무대행을 담당할 일부 임원을 남겨두고 해임총회가 이루어졌고 해당 직무대행자가 조합사무실 점거행위에 나아갔다면 어떨까.

아무리 직무대행자라도 평온한 점유를 깨뜨리고 물리력을 행사했으므로 손괴죄, 건조물침입죄 등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조합사무실은 해임된 조합장 개인의 소유나 점유가 아니라 조합이라는 법인의 소유거나 점유이고, 법인의 소유와 점유는 곧 적법한 대표자의 사실적 지배를 통해 관철되는 것이기에 직무대행자는 얼마든지 조합사무실 관리를 위해 강제로 자물쇠를 뜯고 사무실 내로 진입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설령 시간이 흐른 후 해임결의에 하자가 있어 법원에 의해 해임이 무효로 선언되고 그 결과 적법한 직무대행이 아닌 것으로 뒤늦게 밝혀진다 해도 사무실 점거행위 당시에 그러한 결과를 알았다고 볼만한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범죄행위에 대한 고의가 없어 처벌할 수 없다는 결론은 마찬가지라고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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