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비구역 해제’와 관련하여 주목할만한 고등법원 판결이 나왔다. 판례의 사안은 이러했다.

도시정비법이 ‘토지등소유자에게 과도한 경제적 부담이 발생하는 경우’ 또는 ‘정비구역의 추진상황으로 보아 지정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 정비구역을 해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그 구체적인 기준을 조례로 정하도록 하였다.

이에 경기도 내 몇몇 지자체는 조례에 국·공유지를 제외한 토지면적 2분의 1 이상의 토지소유자의 동의가 있으면 정비구역을 해제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했다. 그러고는 정비구역 해제에 동의한 사람들이 소유한 토지면적이 정비구역 토지면적의 2분의 1 이상이기만 하면 법이 정한 사전절차를 거쳐 곧바로 정비구역을 해제했던 것이다.

법원에서 정비구역 해제를 다투었던 다른 조합들이 ‘조례 무효’와 ‘재량권 일탈·남용’을 주장했던 것과는 달리, 이 사안에서 조합의 주장은 의외로 간단했다. 조례에서 정한 해제요건에 해당하더라도 도시정비법이 정한 해제요건을 만족시켜야 하는데 이 사건에서는 ‘도시정비법이 정한 해제처분의 요건을 갖추지 못하여 위법하다’는 것이었다. ‘조례는 법의 위임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는 지극히 기본적인 법리에서 도출된 이론이었다.

이에 대해 처분청인 피고의 입장은 어땠을까. ‘조례에서 정한 해제요건을 만족하면 그로써 곧 도시정비법이 정한 요건을 만족하는 것이지, 도시정비법의 처분요건을 별도로 만족시켜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광범위한 재량을 가지는 처분청이 도시정비법의 위임에 따라 조례에 구체적인 해제사유를 정하였고 그 조례가 무효가 아닌 이상 조례에서 정한 요건만 만족하면 된다는 것이다. 만약 도시정비법이 정한 요건까지 따로 만족하여야 한다고 해석하면 조례가 구체적인 사유를 정하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어느 견해가 옳을까. 만약 조합의 입장이 타당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분이 있다면, 웬만한 법조인을 능가하는 리걸마인드의 소유자라 자부해도 좋다.

최근 서울고등법원이 이러한 논리로 조합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법원은 ‘토지면적 2분의 1 이상의 동의가 있었다 하더라도 바로 도시정비법이 정한 정비구역 해제사유가 발생했다고 볼 수 없고, 토지면적 2분의 1 이상의 동의는 정비구역 해제사유에 대한 심사·판단을 개시하기 위한 요건 내지 하나의 기준을 설정한 것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조례에서 정한 ‘토지면적 2분의 1 이상의 동의’만으로는 정비구역을 해제할 수 없고, 도시정비법이 정하는 ‘토지등소유자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거나, 정비구역 지정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에만 정비구역을 해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은 그러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정비구역 해제처분이 위법하다는 논리였다.

앞서 제기된 정비구역 해제처분 취소소송에서 ‘조례가 무효’라는 조합들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재량권 일탈·남용’이라는 주장 역시 최근에 선고된 수원고등법원의 판결을 제외하고는 모두 배척되었다.

더욱이 일부 조합들은 그 패소판결이 이미 확정되었던 터라, 그 후에 진행되는 소송에서 법원이 조합의 손을 들어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조례의 요건을 만족하더라도 도시정비법이 정한 해제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위법하다’고 본 이번 판결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 같은 내용의 조례가 적용된 다른 사안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미 확정된 사안들의 결과를 그대로 취하는 것이 훨씬 편한 선택이었을 수 있음에도 정확한 법리를 바탕으로 현명한 판단을 해 주신 재판부께 깊은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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