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6일 국토교통부가 새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 시행에 나섰다. 시공자 선정 시 현장설명회 보증금 요구를 금지시키고, ‘공정경쟁’이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개정 취지와 달리 일반 협력업체에도 입찰보증금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고, 되레 계약업무 처리기준 개정 전보다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입찰보증금 일부에 해당하는 현설보증금 납부를 요구한 사례는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 시행 초기에 등장했다. 시공자를 선정할 때 부실 건설사나 참여의지가 없는 곳들을 확인할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 있다는 일부 주장과 달리, 특정업체 선정을 위한 ‘꼼수’라는 업계의 평가가 이어졌다.

일부 사례에 국한됐던 현설보증금 납부를 요구하는 사례는 점차 확산됐고, 금액도 수십억원까지 치솟았다. 업계에서는 특정 건설사와의 수의계약을 위해 일부러 현설보증금을 높게 책정했다는 의혹도 짙어졌다. 건설사들은 현설 당일 설계도서와 입찰서 작성방법, 홍보방법 등에 대한 내용을 파악하고 입찰참여 여부를 결정한다. 즉, 이러한 내용도 모른 채 돈만 내라는 것과 다름이 없었던 셈이다.

국토부는 현설보증금이 공정경쟁을 방해한다고 판단했고, 입찰보증금 제도를 개선했다. 계약업무 처리기준 개정을 통해 사업시행자가 입찰참여사에 입찰보증금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을 마련했고, 마감일 5일 이전에는 납부할 수 없도록 정했다.

그런데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국토부는 시공자 선정기준이 아닌 일반 협력업체 선정시 적용하는 일반 계약 처리기준에 관련 근거를 명시했다. 사업시행자가 모든 협력업체에 입찰보증금을 요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국 제도 시행 한 달도 채 안된 상황에서 부작용이 나타났다. 통상 정비업체나 설계자에 국한돼왔던 입찰보증금 요구 사례는 협력업체 전반으로 확산됐다. 제도적으로 친환경인증, 이주관리, 교통영향평가에 마을흔적 보전계획업체 등 수십곳에 달하는 협력업체는 입찰보증금 요구가 가능한 대상이 됐다.

공공의 정책 책임감은 무거워야 한다. 정책 시행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방지해야한다. 국토부는 이번 계약업무 처리기준 개정 과정에서 숲이 아닌 나무만 봤다. 결론적으로 개정이 아닌 개악이 됐다. 정비업계에 혼란이 커지기 전에 당장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 재개정에 나서야 한다.

박노창 기자 park@ar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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