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면결의서가 열람·복사 요청 대상이냐는 질의는 지금도 이어진다. 공개된 이후 파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서면결의서 공개 이슈는 이론적으로 보자면 논의할 가치가 별로 없다. 수년 전 대법원이 열람·복사 대상으로 명백히 선언했기 때문이다. 의사록의 ‘관련 자료’로 볼 수 있다는 이유였다.

도시정비법은 열람·복사 요청에 응하지 않는 조합 임원을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관련 자료’의 개념은 사실상 처벌 구성요건에 해당해 엄격히 해석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관련’과 ‘자료’ 모두 무한히 확장될 가능성이 농후한 어휘들인지라 해석을 통한 제한이 불가능에 가깝다.

웬만한 자료들은 모두 도시정비법상 공개대상으로 명시된 그 무엇무엇의 ‘관련 자료’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사실상 조합원이 요청하는 거의 모든 자료가 공개대상이라고 생각하는 쪽이 마음 편하다.

열람·복사 대상은 분명하지만 서면결의서 공개는 조합으로서는 늘 난제이자 고역이다. 조합원 아무개가 어떤 안건에 찬성 혹은 반대했는지, 조합장 선거에서 누구를 찍었는지 만천하에 알려지기 때문이다. 조합원들 개개인의 성향이 가감 없이 드러나 조합에 극렬 항의하는 조합원들도 많다. 정보 공개를 요청하는 측이 서면결의서 확보를 포기할 리도 없다. 이쯤 되면 의사결정의 비밀유지 및 비밀투표 원리와 열람·복사청구권 및 알 권리의 정면충돌이다.

모순적 상황을 타개하려는 노력은 조합에 따라 다양하게 모색되었다. 우선 서면결의서에 기재된 개인의 이름, 주소, 물건지 등의 정보를 가리고 공개하는 방안. ‘개인정보’에 해당한다는 명분으로 서면결의자의 인적 사항을 비공개 처리하면 서면결의서가 누구의 것인지 노출되지 않아 의사표시 기밀성이 유지될 수 있긴 하다. 하지만 이 아이디어는 ‘주민등록번호’를 제외한 모든 정보를 공개하여야 한다는 도시정비법에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어서 곧 자취를 감추었다.

서면결의서 중 의사표시 부분을 가리는 방법도 제안되었다. 이 역시 ‘형상 그대로의’ 서면결의서를 공개하는 것이 아니어서 주민등록번호 외에 사항을 비공개 처리할 근거가 없는 도시정비법에 위반되기는 매한가지다.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받는 방법은 서면결의서 양식을 인적사항 기재 면과 의사표시 기재 면으로 분리하는 것이다(반송용 봉투에만 인적사항을 기재하게 하고 동봉되는 안건 용지에는 의사표시 외에 인적사항이 기재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일부분을 가리거나 지우는 등 별도 가공을 하지 않더라도 의사표시 기재 면과 인적사항 기재 면을 분리해 보관하면 향후 열람·복사 신청 시 공개되더라도 인적사항과 의사표시가 연결되지 않아 의사표시의 비밀은 여전히 유지된다. 비공개되는 부분이 없어 도시정비법 위반 소지도 없다. 인적사항과 의사표시 내용을 분리하는 현장투표 방식을 서면결의서에 응용한 것이다.

일견 완벽해 보이는 공개방법인데 일부 가처분 재판부에서 이의를 제기했다. 인적사항과 의사표시가 완전히 분리되면 조작의 위험성이 높아 공정성을 해할 수 있어 허용하기 어려운 서면결의 방식이라는 논거였다. 서면결의서 양식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인적사항과 의사표시가 분리되는 현상은 현장투표도 마찬가지기에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어쨌든 일부 재판부의 판단을 아예 무시하기도 부담스럽다.

인적사항과 의사표시를 분리하되 언제든 둘을 연결할 수 있고 공개 시 의사표시의 비밀도 유지할 수 있는 묘책은 무엇일까. 답은 도시정비법에 있다. 합법적 비공개 사항인 ‘주민등록번호’를 의사표시 면에 인쇄하거나 기재케 하여 연결고리로 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분리해서 관리하더라도 언제든 다시 연결할 수 있고, 공개 시 연결고리인 주민등록번호를 가리면 의사표시의 비밀 역시 유지된다. 실현 가능한 최선의 방안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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