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법원에서 정비사업 조합설립 동의서를 ‘법정동의서’라고 표현하여 동의서 자체의 법적인 효력을 정면으로 인정하는 판례가 나왔다. 이 판례가 나오기까지 실로 험한 여정을 거쳐 왔다.

재개발과 재건축을 규율하는 법률이 통합되어 제정된 도시정비법은 2003년 7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이 법률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도시정비사업에 대한 통일적이고 체계적인 규율을 함으로써 정비사업 전반에 긍정적인 역할을 해 왔다.

그런데 정비사업에 대한 입법의 오류와 해석의 편협함으로 인해 정비사업 현장에 엄청난 혼란과 재산권 행사에 지장을 초래한 장면이 있다. 조합설립이 무효라는 판결이 선고되어 무의미한 조합설립 절차를 반복하면서 수 년 동안 조합원들의 희생을 낳은 사안이 있다. 바로 조합설립동의서에 기재된 내용이 조합설립에 동의하는 사람들에게 제공되어야 할 정보가 불충분하다고 본 판결이다. 그 동의서는 다름 아닌 국토교통부가 마련한 ‘표준동의서’다.

당시 통용되던 하급심 판결의 대표적인 논리는 이렇다. 도시정비법이 정하는 토지등소유자가 하여야 하는 동의 내용과 집합건물법의 재건축결의의 내용이 유사하다. 집합건물법 제48조의 해석상 재건축 비용의 분담에 관한 사항은 집합건물의 구분소유자들로 하여금 상당한 비용을 부담하면서 재건축에 참가할 것인지, 아니면 시가에 의하여 구분소유권 등을 매도하고 재건축에 참가하지 않을 것인지를 선택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고, 재건축 결의의 내용 중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부분으로서 재건축의 실행단계에서 다시 비용분담에 관한 합의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그 분담액 또는 산출기준을 정하여야 하고 이를 정하지 아니한 재건축 결의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무효다.

이 법리는 도시정비법에 따른 주택재건축정비조합 설립동의의 효력을 판단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조합설립 동의의 내용 중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부분이라 할 비용분담의 기본이 되는 ‘건축물철거 및 신축비용 개산액’ 항목이 공란이거나 구체적으로 기재되지 않은 조합설립 동의서에 의한 설립행위는 무효임이 명백하다. 이러한 논리에 의해 전국적으로 많은 수의 조합 설립이 무효라거나, 조합의 매도청구가 효력이 없다는 판결이 났다.

필자가 보기로는 매도청구에 관한 2003년도 제정 도시정비법 제39조에서 “미동의자의 토지 및 건축물에 대하여는 집합건물법 제48조의 규정을 준용하여 매도청구를 할 수 있다”라고 규정한데서 이러한 비극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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