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정비법은 정비구역 내 일정 수의 토지등소유자 또는 조합원들이 해산을 원할 경우 추진위원회 승인처분이나 조합설립인가 처분을 취소하도록 하는 한시적 규정을 설치하여 두고 있다. 


주택시장의 장기 침체를 고려하여 일단 정비사업의 닻을 올린 곳이라도 주민들 스스로 의사를 결집하여 보다 용이하게 퇴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는 것이다. 


지역 주민들의 의사가 올바르게 반영되기만 한다면 법이 열어준 이와 같은 출구를 부정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간혹 법의 규율과는 다른 기준이 적용되어 억울하게 추진위원회나 조합이 해산되는 경우가 있기에 행정청은 출구제의 시행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최근 한 구역에서 토지등소유자 과반수가 추진위원회 해산에 동의하였음을 이유로 추진위원회 승인이 취소되었다. 해당 추진위원회 사무실을 방문해 그간의 사정을 들어보니 석연치 않은 구석이 없지 않았다.

행정청이 해산동의서 제출기한은 무한정 늘려주면서도 해산동의 철회서 제출기회는 아예 차단하고 받아주지 않았다는 추진위원회 측의 설명 때문이었다. 


행정청이 해산동의서 제출기한을 무한정 늘려주었다는 말은 어떤 뜻일까. 


추진위원회 측의 표현을 빌자면 해산동의율이 부족한데도 행정청이 신청을 반려하지 않고 해산동의율이 채워질 때까지 보완만을 반복해서 명하였고 결국 충분한 시간을 확보한 비대위 측이 해산동의서를 추가로 징구하여 제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행정청이 ‘반려’가 아니라 ‘보완’만을 반복함으로써 비대위를 도와주었다는 추진위원회 측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아무튼 행정청이 동의율에 미달하는 추진위원회 해산신청을 받은 이후 상당한 기간의 보완기간을 부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비대위 측의 해산동의율 충족을 도와준 모양새가 된 것만은 사실인 듯하다.


접수된 민원서류에 흠이 있는 경우 즉각적인 반려가 아닌 보완을 명하는 것은 민원사무 처리에 관한 법률에 따른 결과이지 행정청이 의도적으로 비대위를 도와주기 위한 것은 아니다. 


보완의 횟수와 보완기간에 관하여도 법에 일정한 제한이 있기에 보완명령만을 거론하며 행정청의 편파성을 문제 삼기에는 객관적 근거가 부족하다.


행정청의 편파성은 보완을 명함으로써 비대위 측에 시간을 벌어주었다는 것보다 행정청이 보완기간 동안 추진위원회 측의 해산동의 철회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도시정비법 시행령에 따르면 해산동의의 철회는 “동의에 따른 인·허가 등의 신청 전”에 하여야 한다. 


이 규정에 대한 행정청의 해석은 분명하다. 일단 인·허가 등의 신청행위라고 볼만한 외관이 있으면 더 이상의 철회권 행사는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법령이 동의 철회를 인·허가 등의 신청 전까지로 못 박아 둔 것은 처분 시가 아닌 인·허가 신청 당시의 동의 상황을 기준으로 인·허가 등 처분의 적법성이 검토되기 때문이다. 


인·허가 신청 시를 기준으로 동의 상황이 법이 정한 기준을 충족하면 적법한 처분이고 그렇지 못하면 위법한 처분이 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인·허가 신청 이후에 제출되는 추가적 동의서나 철회서는 원칙적으로 인·허가 처분의 적법성 판단에 고려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행정청이 일정한 민원신청에 대하여 보완을 명하는 것은 언제일까. 행정청이 보기에도 신청에 흠이 존재할 때이다. 


흠이 존재하여 보완의 대상이 된 신청행위는 외관상 신청에 유사할 뿐 법률적 견지에서는 진정한 ‘신청’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반려하여야 마땅하지만 부분적 흠을 이유로 전면적 반려와 전면적 재신청을 강제하기보다 간편하고 합리적으로 적법한 신청행위에 이를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려는 것이 보완명령의 근본취지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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