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정비법은 조합원 10분의 1 이상의 요구에 근거해 조합임원을 해임할 수 있는 총회를 소집할 수 있도록 특별규정을 두고 있다.

임원해임 안건의 성격상 조합장에게 스스로 총회소집을 기대하기 어려워 소수조합원들에게 해임안건에 국한해 총회소집의 이니셔티브를 부여한 것이다.

도시정비법이 해임안건의 특수성을 고려해 소수조합원에게 총회소집의 주도권을 부여한 취지는 나무랄 데 없다.

하지만 법률의 운용 현실은 입법자의 기대와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일쑤다. 무능력하고 부패한 조합임원들을 조합원들 스스로 심판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 법률의 취지였을 테지만 유감스럽게도 빈번한 해임발의로 조합임원들을 부당하게 압박하고 불필요한 비용을 지출케 하는 등 조합원들의 갈등과 혼란을 부추겨 사업 진행을 더디게 만드는 주요인이 된 것이 현실이다.

법원조차 소수조합원의 권리를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기는지 웬만한 하자로는 해임총회 개최금지 가처분을 신청할 엄두조차 내기 어렵다.

해임총회에 조합원 10분의 1 이상의 직접참석 요건이 적용되느냐에 관한 이슈도 소수 조합원의 권리 보호를 중요시하는 법원의 판단 경향을 뚜렷이 보여준다.

법 개정 이전 하급심의 판단은 엇갈렸다. 발의자 대표에 의해 소집되는 해임총회는 조합원 10분의 1 이상의 발의에 기초한 것이어서 별도로 직접참석 요건을 구비할 필요 없다는 결정이 먼저 나왔다.

이에 반해 발의자 대표에 의한 해임총회는 조합장의 소집권한에 대한 특칙일 뿐이어서 직접참석 요건에 관한 규정은 해임총회에도 여전히 적용되는 것이 옳다는 판결도 뒤따랐다.

조합원 10분의 1 이상의 발의에 기초하기에 해임총회에는 직접참석 요건이 필요치 않다는 판단은 그럴듯해 보여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조합원들의 발의는 임원해임을 위해 총회를 소집하려는 의사에 그칠 뿐 그 자체로 해임총회에 참석하거나 의결권을 행사한 것으로 인정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발의자도 서면결의서를 제출하거나 직접 참석해야 총회 의사정족수에 가산된다는 점만 떠올려봐도 ‘발의’가 ‘직접참석’을 대체할 수 없음을 쉬이 알 수 있다. 이 대목에 이르면 해임총회에도 직접참석이 요건이 적용된다는 판단이 법적 상식에 좀 더 부합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대법원의 판단은 어땠을까. 많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겠지만 법리적으로는 매우 간단했다.

도시정비법이 총회소집에 관한 규정인 ‘제24조에도 불구하고’라는 표현을 썼으니 해임총회에는 직접참석 요건을 규율하는 ‘제24조제5항’도 배제되는 것이 옳다는 결론이었다. 어느 판단이 법적 상식에 더 가까운지를 가리기에 앞서 법 해석은 법률규정을 절대 뛰어넘을 수 없기에 대법원의 판단은 이론의 여지 없이 타당하다.

이후 도시정비법의 해당 규정은 ‘제44조(구법 제24조) 제2항에도 불구하고’로 개정되었다. 발의자 대표에 의한 해임총회 규정이 조합장의 소집 권한(제44조제2항)의 특칙일 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직접참석 요건(제45조제6항)을 배제할 결정적 근거가 사라졌으니 해임총회에도 반드시 조합원 10분의 1 이상이 직접 참석해야 적법하다는 결론에 닿게 된다.

조합원 총회에 직접참석 요건을 요구하는 이유가 조합원들을 총회 현장으로 유도해 토론과 비판 과정에 참여케 함으로써 의결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려는 취지라는 점을 고려하면 애당초 조합원 10분의 1 이상의 발의로 조합원 직접 참석요건을 퉁 치는 것이 가능했던 구법은 법적 상식에서 벗어나 있다.

비교적 신속한 법 개정을 통해 상식이 회복된 것은 그간 해임총회 규정이 너무나 간단히 오‧남용되어왔던 현실을 생각하면 대단히 바람직하고 또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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