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집행부 체제를 반대하는 조합원은, 조합원 1/10 이상으로부터 총회소집요구서(발의서)를 받아 조합임원 해임을 위한 총회를 소집할 수 있다(도시정비법 제43조제4항). 발의자 대표는 해임총회의 소집·진행에 있어 조합장의 권한을 대행한다.

해임총회가 성공하였다면 곧 새로운 집행부 구성을 위한 선임총회가 열릴 것이고 발의자 대표는 대부분 스스로 새로운 집행부 구성원이 되거나 적어도 그 측근일 것이므로, 해임총회서류는 자연스럽게 차세대 집행부가 이끄는 조합에 이관될 것이다. 반면 해임안건이 부결되었다면 발의자 대표는 총회 의사록은 작성조차 하지 않을 것이고 보관하던 서류는 폐기하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발의자 대표는 해임총회서류를 임의로 폐기해도 되는 것일까. 해임될 위기를 넘기고 자리를 지켜낸 조합 집행부는 발의자 대표에게 해임총회서류의 인계를 요구할 수 있을까.

조합 집행부가 해임총회서류를 확인하려는 것은 자칫 해임발의에 대한 보복처럼 보일 수 있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해임총회서류는 조합의 소유이므로 발의자 대표는 해임총회가 무산되었더라도 이를 조합에 인계할 의무가 있다.

발의자 대표가 해임총회서류를 임의로 폐기한다면 이는 ‘문서손괴’에 해당한다. 형법 제366조는 타인의 문서를 손괴·은닉·기타 방법으로 효용을 해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다.

해임총회서류 중 조합원이 작성한 총회소집요구서 및 서면결의서 등은 작성자인 조합원의 소유라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비록 자기명의의 문서라 할지라도 이미 타인(타기관)에 접수되어 있는 문서에 대하여 함부로 이를 무효화시켜 그 용도에 사용하지 못하게 하였다면 일응 형법상의 문서손괴죄를 구성한다”고 판시하였다(대법원 87도177 판결). 문서는 일반적으로 작성자의 소유이나 이를 타인에 제출·접수한 경우 문서의 소유권이 넘어간다는 취지이다.

발의자 대표는 조합원들이 자신에게 서류를 접수하였으므로 자신에게 소유권이 있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으나, 발의자 대표는 해임총회에 있어 조합장의 권한을 ‘대행’할 뿐이고 조합장이 조합의 기관으로서 총회서류를 접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발의자 대표 역시 조합의 기관으로 해임총회서류를 접수한 것이다. 조합 기관의 행위는 곧 조합의 행위이므로, 해임총회서류의 접수자는 조합이다.

대전지방법원 2002고단89 판결에 따르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라고 해도 관리소 또는 입주자대표회의 소유에 속하는 문서를 함부로 손괴할 권한이 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위 회장에게 문서손괴죄가 성립한다고 보았다. 대행자의 권한은 본래 직무자의 권한을 초과해서는 안 되고, 조합장이 총회서류를 임의로 폐기할 수 없는 것처럼 발의자 대표 역시 해임총회서류를 임의로 폐기할 수 없다.

조합원들의 알권리는 성역이 없으며, 조합원들은 일반적인 총회 뿐 아니라 무산된 해임총회서류에 대해서도 열람·공개를 청구할 수 있어야 한다. 발의자 대표는 조합원들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공적인 지위에서 해임총회를 소집한 것이므로, 조합원들의 알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차원에서도 해임총회서류를 조합에 인계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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