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홍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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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정부가 부동산시장 안정화를 골자로 6·17 대책을 내놨습니다. 이번 대책에는 투기세력 유입을 막기 위한 재건축 조합원 2년 거주의무제 등의 내용이 담겼는데요. 시장에는 거센 반발과 함께 후폭풍이 몰아쳤습니다. 2년 이상 거주하지 않은 조합원에게는 새 아파트 입주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죠.

그런데 반대급부로 사업 속도를 내고 있는 단지들이 포착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추진위 단계에 있는 곳들은 조합설립인가를 받기 위한 주민 동의율이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올해 안으로 조합설립인가를 받으면 해당 제도를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전세를 내놓았던 집주인들이 서둘러 동의서를 제출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서울 서초구 신반포2차는 최근 집행부를 재정비하는 등 8월 중 창립총회를 개최한 후 9월 조합설립인가를 목표로 재건축사업을 추진 중입니다. 강남구 개포주공5단지와 통합 재건축을 추진 중인 6·7단지도 조합설립인가를 서두르고 있습니다.

준강남권으로 평가 받는 과천주공8·9단지도 2년 거주 요건이 되레 호재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토지등소유자들은 자발적으로 자원봉사단 모임을 구성하고, 동의서 징구를 위해 실시한 모금도 무려 1억5,000만원을 돌파했습니다. 추진위는 11월 조합설립인가를 목표로 동의서 확보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2년 거주의무제가 사업 초기 단계에 있는 단지에서는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안전진단을 이제 막 통과했거나 추진위 단계에 들어서지 못한 곳들은 현실적으로 올해 안에 조합설립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해당 단지에 실거주하지 않는 소유자들은 재건축에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분양을 받지 못한다면 정권 교체나 제도변경이 이뤄질 때까지 재건축을 늦추자는 쪽으로 의견이 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임대사업자로 등록한 소유자 역시 재건축 동의서를 제출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업계의 중론입니다. 해당 소유주는 사실상 현금청산자로 분류되고, 분양권을 받으려면 과태료를 물어야합니다. 정부는 당초 임대사업자로 등록할 경유 세제혜택 등을 주는 대신 최장 8년의 의무기간을 설정해놨습니다. 만약 임대계약을 파기한다면 3,000만원의 과태료를 납부해야 합니다.

정부는 2년 거주의무제를 통해 추진위 단계에 있는 사업장들의 빠른 재건축 추진에 핵심을 둔 순기능을 유도하거나 바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투기 근절에만 행정력을 쏟은 나머지 시장 상황 및 부작용을 미리 예측하지 못한 채 규제의 칼날만 들이민 셈이죠. 그리고 준공 30년 이상 노후 아파트들의 재건축 초기 단계 진입조차 원천 차단시켰습니다. 업계는 법에서도 정하고 있는 재건축 요건 및 절차를 모두 무시한 규제만능주의 행정에 근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노후 아파트들의 주거환경 개선 및 안전성 확보에 대한 대안도 함께 제시해야하지 않을까요.

이혁기 기자 lee@ar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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