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정비법에 의한 정비사업에서 토지등소유자 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단순한 듯 어려운 과제다. 토지등소유자 수가 중요한 것은 조합설립인가에 필요한 조합설립동의율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토지등소유자를 잘못 파악해서 조합설립인가 신청이 반려되며 행정청이 고심 끝에 발령한 조합설립인가가 법원에 의해 취소되거나 무효로 확인된다.


추진위원회나 관할 행정청이 토지등소유자 수를 잘못 파악하는 것은 어쩌면 애교에 가깝다. 법적 분쟁에 관한 최종적 유권해석을 소명으로 삼는 법원조차도 때로 토지등소유자 수에 관하여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 때문이다. 


토지등소유자 수 산정에 관하여 가장 최근 정리된 쟁점은 재건축을 제외한 정비사업에서 지상권자를 토지등소유자 수에서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것이다(재건축에서 지상권자는 토지등소유자가 아니기에 지상권을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다).


토지에 지상권자가 존재하는 경우 토지등소유자 수를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에 관하여 우리 도시정비법은 짧고 굵게 규율한다. ‘토지의 소유자와 지상권자를 대표하는 1인을 토지등소유자로 산정한다’는 것이다.


단순한 지침이기에 적용이 어렵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구체적 사안을 제시하면 머리가 좀 복잡해진다. 1필지의 땅과 그 위에 지어진 건물을 모두 1인이 소유하고 있다. 그런데 그 땅위에 지상권이 설정되어 있다. 토지등소유자 수는 몇일까. 


실제 소송에서 심각하게 문제가 된 사안이었다. 서울고등법원은 토지등소유자 수를 2로 파악했다. 

건물은 단독소유이지만 토지에 소유자 이외에 지상권자가 개입되어 있어 건물과는 별도로 1개의 토지등소유자 수를 추가로 인정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건물과 토지의 소유형태가 달라 각각 조합설립동의권을 인정하여야 한다는 취지다. 


같은 논리로 10여 건의 토지에 지상권이 설정되어 있다는 이유로 건물과는 별도로 토지등소유자 수를 인정하였다. 분모에 해당하는 전체 토지등소유자 수가 늘어나니 조합설립동의율이 75%에 미달한다는 계산이 도출됐고 조합설립인가는 취소되었다.


법원에 의하여 조합설립인가가 취소되면 이후 벌어질 상황은 예측이 어렵지 않다. 조합설립인가를 전제로 하는 조합의 모든 활동이 금지된다. 사업시행인가를 위한 총회도, 관리처분 계획의 수립도, 하다못해 협력업체의 선정도 허용되지 않는다. 


통상 조합설립인가를 취소하는 법원의 판결이 내려지면 당사자의 신청에 의해 조합설립인가의 효력도 잠정적으로 정지되기에 그러하다. 


골치 아픈 소송을 포기하고 조합설립동의서를 새로 징구하고 창립총회를 다시 개최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으나 유감스럽게도 대부분의 조합에게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대법원 판결만을 하염없이 기다릴 밖에. 


해당 조합도 결국 3년 가까운 동면상태를 감내하여야 했다. 고등법원의 토지등소유자 수에 관한 판단이 초래한 재앙같은 현실에 비하여 대법원의 논리는 허탈할 정도로 단순하였다. 


도시정비법은 지상권자에게 대표자 선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있을 뿐이기에 토지등소유자 수를 판단함에 있어 지상권자를 고려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단독소유권이나 공유지분권이 대상이 되는 물건을 포괄적·배타적으로 지배하는 완전한 권리임에 반하여 지상권은 물건을 사용하기 위하여 설정되는 제한적 권리로서 본질적으로 소유권의 부분적 내용에 불과하다. 


그러하기에 토지등소유자 수 판단에 있어 지상권을 소유권이나 공유지분권과 같은 차원에서 다룰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은 법적으로는 상식에 가깝다. 상식의 회복에 3년이라는 고통의 기간이 필요하였던 셈이다. 정비사업에서 소송의 중요성은 패소하였을 때 절감하게 된다는 역설을 뼈아프게 시사 하여준 비극적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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