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대부분의 조합들이 예정했던 총회를 취소하거나 연기하고 있다.

총회를 열지 못하면 예산을 수립할 수 없는데, 그렇다면 당장 사업 진행에 필요한 계약을 체결하거나 비용을 지출할 수 없는 것인지 문의가 늘어나고 있다.

이번과 같은 전국적인 비상 상황이 아니더라도 조합을 운영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사유로 예산 수립이 늦어지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이때 예산을 집행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지 살펴보자.

‘예산’이란 ‘조합의 정관에서 정한 1회계연도의 수입·지출 계획’을 의미하고, 통상 조합은 정관에 ‘조합의 회계는 매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로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따라서 전년도 예산을 수립했다고 하더라도, 금년에 예산을 수립하지 않았다면 원칙적으로 예산 집행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조합들은 정관 또는 별도의 예산·회계규정으로 ‘부득이한 사유로 회계연도 개시 전까지 당해 연도 예산이 성립되지 아니한 때에는 전년도 예산 내에서 집행할 수 있다’는 내용의 규정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준예산 제도를 규정한 것으로, 준예산 제도는 정부·지방자치단체를 비롯한 단체와 조직의 일반적인 예산 운용 방식이다.

따라서 도시정비법에 명문의 규정이 없다 하더라도 이러한 내용의 정관 또는 예산·회계규정을 가지고 있는 조합이라면, 부득이한 사유로 예산 수립이 늦어질 경우 전년도 예산에 준하여 예산을 집행할 수 있다.

우리 법원 또한 위와 같은 규정을 둔 조합에 관하여, 예산이 의결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어떠한 예산 집행도 불가능하다고 해석하는 것은 조합의 업무 추진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하고 임원에게 기대가능성 없는 행위를 강요한다는 측면에서 부당하다고 판시한 바 있다.

그런데 많은 조합들을 자문해온 결과, 위와 같은 규정은 조합이 필요한 경우 준예산을 가동하는 근거로 삼기에 충분하지 못하다.

먼저 ‘부득이한 사유’에 관한 부분을 보면, 조합이 준예산을 적용하여 예산을 집행하였는데, 이후 부득이한 사유가 있었는지 문제되는 경우가 있다.

조합 입장에서는 긴급한 업무 처리 또는 자금 부족에 따른 비용 절감(사업시행계획 또는 관리처분계획 수립 총회에서 예산 수립 건을 함께 진행) 필요에 따라 예산 수립이 늦어진 것인데, 비대위는 이는 부득이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고 결국 조합이 예산 수립 없이 예산을 집행하여 도시정비법을 위반하였다고 주장하는 경우다.

본질적으로 준예산 제도는 ‘객관적 예산 공백’ 상황에서 단체나 조직의 활동 마비 및 이로 인한 구성원의 손해를 방지하는데 주안점이 있는 바, ‘부득이한 사유’를 넓게 해석하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이와 관련하여 법적 분쟁이 발생할 수 있고 보수적인 관점에서 부득이한 사유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판단될 가능성도 있다. 이를 고려하면 관련 규정에서 ‘부득이한 사유로’라는 문구를 제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편 1년 이상 예산 수립이 늦어지는 경우도 문제다. 조합은 건설경기가 침체되거나 각종 인가 관련 장기간의 행정소송이 발생하는 경우 수년간 사업이 중단될 수 있다. 이때 수년 전에 수립한 예산을 기준으로 사업 재개에 필요한 비용을 집행할 수 있을까.

법원은 구체적인 사정에 따라 3년 이상 이전에 수립된 예산을 적용한 예산 집행도 도시정비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한 바 있다. 그러나 1년 이상 예산 수립이 지연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모두 입증하기 어려운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서울특별시 정비사업 조합 등 표준 예산·회계규정은 이러한 경우에 대비하여 예산 불성립이 1년을 초과하는 경우에도 사무실 운영을 위한 불가피한 경비와 예산 편성을 위한 총회비용의 집행에 관하여는 준예산을 적용할 수 있다는 취지의 규정을 두고 있다. 조합들 또한 이러한 조항을 적극 차용함으로써 사업 재개의 걸림돌을 사전에 없애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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