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정비법이 예정하고 있는 정비사업시행자의 원칙적 모습은 정비구역내 토지등소유자가 모여 이루어진 법인으로서의 조합이다.

도시정비법상 조합은 반드시 법인이어야 하고 따라서 그 실체를 구성하는 개별 조합원들과는 법적으로 독립한 권리·의무의 주체로 취급된다.

법인으로서의 조합이 조합원들과는 별개의 인격을 가진다고 해도 이는 정비사업의 원활한 시행을 위한 법률적 수단으로서의 성격이 짙다. 사업의 성과에 따라 성장과 확대의 가능성이 무한히 열려있는 일반 기업과 달리 시작과 끝이 분명한 일회적 정비사업의 특성상 사업의 성과는 조합 자체의 성장과 발전보다 구성원인 조합원들의 수익분배에 직결될 뿐이다.

조합의 사업구조가 궁극적으론 조합원들의 분배에 연결되다 보니 조합원들 간 형평성은 도시정비법령의 주요한 관심사 중 하나가 된다.

형평성은 용어 자체의 단순함과는 달리 추진위원회 구성부터 이전고시에 이르기까지 정비사업의 전 과정에서 다양한 형태의 갈등과 분쟁으로 끊임없이 도전받아 달성이 쉽지 않은 가치다. 가장 크고 중요한 자산인 토지나 건축물을 투자하는 사업이기에 조합원 개개인의 이해관계가 쉽게 조화되지 않고 형평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조합원이 늘 나타나기 때문이다.

형평성이란 주제와 관련해 첫머리에 등장할만한 이슈는 토지나 건축물을 여럿 보유한 다물권자들이다. 일반 기업의 전형인 주식회사는 주식을 많이 가진 주주에게 더 많은 의결권과 더 많은 수익을 배분한다.

그러나 도시정비법은 일반 기업과는 전혀 다른 원리를 채택한다. 보유한 소유권이 몇 개든 그 가액이 얼마든 원칙적으로 조합원 간 의결권 평등의 원칙을 도입한 것이다.

따라서 다물권자라고 하더라도 토지등소유자 지위는 1개고 그에 따라 조합설립동의권도 1개만 부여된다. 조합설립 이후 조합원 지위도 1개이며 조합원총회에서의 의결권도 1개에 불과하다.

조합원 지위가 1개이다 보니 다물권자에게 분배되는 수분양권의 개수 역시 1개인 것이 원칙이다. 아무리 많은 주택을 보유했던 조합원이라도 정비사업에 참여해 분양받을 수 있는 주택은 특별한 예외가 없는 한 1개에 그친다.

보유한 부동산의 개수나 가치를 무시하고 시종일관 머릿수만 따져 형식적 평등만을 추구한다면 다물권자가 입는 불이익이 극심해져 결국 조합원 간 형평성은 깨지고 말겠지만 도시정비법은 형평성 유지를 위해 몇 가지 법적 수단을 동원한다.

먼저 조합설립단계에서 머릿수에 따른 토지등소유자 수 동의요건 외에 토지면적 요건을 부가해 토지면적에서 우위를 점하는 다물권자들의 의사를 좀 더 배려한다.

수분양권 분배의 측면에서도 비록 개수는 1개에 그치더라도 기존 부동산의 가격이 높으면 공급순위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도록 해 선호 평형대를 타 조합원보다 우선적으로 배정받을 기회를 다물권자에게 부여한다.

보다 근본적으로 정비사업 시행으로 인한 비용과 수익의 분배는 각 조합원이 보유한 종전자산가액의 비율에 의하는 것이 원칙이어서 정비사업에서 수익이 창출된다면 가치가 큰 종전자산을 보유하는 다물권자에게 더 큰 수익이 돌아가게 된다.

‘주택’이라는 재화가 가지는 특수성과 정비사업이 추구하는 공익적 목적에 의해 다물권자들이 조합원 지위나 수분양권의 양적 측면에서 불이익을 입지만 실질적 이익 귀속의 합리성으로 조합원 간 형평성이 끝내 유지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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