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홍영주 기자]
[그래픽=홍영주 기자]

서울 중구 을지로 세운3구역에 위치한 유명 노포(老鋪)인 ‘을지면옥’이 보존을 거부함에 따라 철거 수순을 밟게 됐습니다.

지난해 1월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의 역사와 지역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노포(老鋪) 등 생활유산과 도심 전통산업을 이어가는 있는 산업생태계를 최대한 보전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당시 세운상가 일대는 세운재정비촉진계획에 따라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세운3구역은 이미 이주·철거가 진행 중이었는데, 을지면옥과 양미옥 등의 오래된 가게들이 철거 대상에 포함됐습니다. 해당 노포들은 재개발에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보상에 대한 협의가 불발되면서 이주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보상 협의가 장기화되는 사이 노포에 대한 철거는 의견이 분분하게 나눠졌습니다. 시민단체 등에서는 전통과 문화가 있는 노포를 철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문화적 가치가 없는 낡은 점포를 굳이 보존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그러자 서울시가 나섰습니다. 박 시장은 을지면옥 등 노포를 보존하는 것은 물론 아예 세운3구역에 대한 재정비촉진계획 자체를 재검토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시가 2014년에 마련한 재정비촉진계획에 생활유산을 반영하지 못한 채 수립됐기 때문에 ‘보존’을 원칙으로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상 노포의 입장을 대변한 셈입니다.

하지만 연내 발표하겠다던 시의 재정비촉진계획 발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지난 4일에야 세운재정비촉진지구에 대한 재검토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약 1년 3개월만에 재검토 결과를 내놓은 것입니다. 그 사이 세운3구역은 사업을 중단해야만 했습니다. 이미 이주가 진행됐던 만큼 이주비 대출에 따른 금융비용 등이 무려 1,500억원 가량 발생했을 것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시가 발표한 세운재정비촉진계획에서는 세운상가 일대의 건축물 상당수를 보존 또는 재생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상인과 토지주, 사업시행자, 전문가 등과 무려 80차례가 넘는 논의를 거친 결과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문제가 됐던 ‘을지면옥’은 철거될 전망입니다. 시가 노포 보존을 위해 촉진계획을 재검토했지만, 을지면옥 소유주가 원형 보전을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건물에 입점해 현재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려 다시 영업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시가 사업을 중단시키면서까지 촉진계획을 변경한 이유는 바로 ‘을지면옥’이었습니다. 노포를 보존한다는 명분에서였죠. 하지만 무조건적인 보존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특히 을지면옥보다 오래된 노포는 철거 대상이 되기도 하면서 시의 보존 기준에 대한 질타도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을지면옥의 철거가 기정사실화하면서 재검토 결과는 졸지에 면목이 없게 됐습니다.

심민규 기자 smk@ar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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