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고에서 조합해산동의 등을 통해 정비사업이 중단되면 사업시행과정에서 조합이 부담한 채무에 대한 책임분담의 문제를 마주하여야 하고, 일부 이견이 있긴 하지만 조합원들이 조합채무에 대하여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도록 해주는 환상적 마법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이번 기고를 통해서는 조합의 채무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조합원이 어떠한 모습으로 그 책임을 분담하게 되는 것인지에 관하여 알아보자. 


조합채무에 관한 책임분담 문제를 거론하려면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이론을 구구절절 읊는 것보다 실제 벌어지고 있는 소송현상을 살피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된다. 실재하는 소송현상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굳이 머리 아프게 새로운 방안을 모색할 필요도 없으니 말이다. 실재하는 소송현상이라는 어려운 말을 동원하니 거리감부터 느껴지겠지만 사실 모두들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라 이해하기에 별 어려움은 없다.

조합해산동의를 통해 조합설립인가가 취소되면 누구보다 조합임원들의 표정이 가장 어두워진다. 오랫동안 염원하였던 정비사업이 좌절된 탓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개인재산에 대한 가압류야말로 견디기 힘든 고통의 근원이다. 조합의 채권자(주로 자금투여 규모가 큰 시공자)가 어떻게 개인인 조합임원의 재산에 가압류 조치를 취할 수 있을까. 시공자와 조합임원 사이의 연대보증계약 때문이다. 본디 조합임원이 조합채무에 대하여 직접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바로 이 별도의 연대보증계약이 조합임원 재산에 대한 가압류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된다. 


조합채권자인 시공자 등이 조합임원의 재산을 가압류하면 조합임원은 이제 가만히 앉아서 당하지만은 않는다. 이미 여러 사례들을 통하여 검증된 바와 같이 조합임원은 다른 조합원들의 재산에 대한 가압류 조치를 취해둠으로써 조합채무에 대한 공평한 책임분담을 시도한다. 조합임원의 다른 조합원들의 개인재산에 대한 가압류 신청을 인용한 다수 법원의 논리는 필경 대단히 단순할 터이다. 조합채무는 조합원들이 공평하게 분담하여 책임져야 하는데 일단 조합임원이 개인재산에 우선적으로 가압류를 당함으로써 개별적 분담비율을 초과하여 채권을 추심하당하고 있으니 그 초과된 비율만큼 다른 조합원들의 책임을 대신 져 준 것이고 따라서 그 금액만큼 다른 조합원들에 대하여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으니 그 구상권을 보전하기 위한 가압류 신청도 인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식적이고도 단순한 논리이기에 더욱 강력한 설득력이 얻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해보면 이와 같은 조합채무에 대한 책임분담 시스템에는 심각한 오류가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구상금 채권이라는 것은 돈을 갚아야 마땅한 사람이 있는데도 누군가 대신 그 돈을 갚아주었을 때 대신 갚아준 금액만큼 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조합임원이 연대보증채무를 이행하는 것은 조합의 ‘시공자에 대한 채무’를 면하게 해줄지언정 조합채무 자체를 근본적으로 사라지게 해주지는 않는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연대보증인인 조합임원이 조합채권자인 시공자 에게 조합이 꾸어온 돈을 대신 갚아주어도 조합채무는 여전히 남아 있게 된다. 조합을 대신하여 돈을 갚아준 조합임원은 조합에 대하여 구상금 채권을 취득하기 때문이다. 조합임원이 조합 대신 빚을 갚아주었으니 이제 조합은 시공자가 아닌 그 조합임원에게 그 돈을 돌려주어야 한다는 얘기다. 조합 입장에서 본다면 채권자가 시공자에서 조합임원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조합채무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면 조합원들의 조합채무에 대한 분담책임 역시 근본적으로 바뀐 것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어떠한 형태로든 조합채무가 존재하는 한 조합채무에 대한 조합원들의 분담책임 역시 미완의 과제로 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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