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 재산에 대한 가압류를 논한다는 것은 상당히 서글픈 일이다. 정비사업의 실패 국면에서 불가피하게 맞닥뜨리게 되는 악몽 같은 주제이기에 그러하다. 


마음 같아선 필사적으로 외면하고 싶지만 괴로운 세상사 치고 못 본 척 시침을 떼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일이 있던가. 


특히 누군가에게 돈으로 책임을 져줘야 하는 일이라면 내 호주머니에서 피 같은 돈이 나가지 않고서는 결코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법이 없다. 


정비사업은 철저한 외상사업이다. 예외란 없다. 누군가로부터 돈을 꾸어와 일단 사업비로 충당하고 나중에 새 건물을 지어 판돈으로 빚을 메꾸는 그런 구조. 시장상황이 좋아 새 건물을 비싸게 팔수만 있다면 너끈히 빚을 갚고도 돈이 남아 조합원들에게 공평하게 나눠주는 행복한 고민을 하면 된다. 


불황기를 맞아 시장이 암울하다면? 별 수 없다. 덤핑이라도 해서 물건을 팔아 빚을 가려야 한다. 깎아 팔기 아까우면 시장상황이 호전되길 기다리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꾸어온 돈은 그리 온순하지 않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납게 이자가 불어난다. 시간이 돈이라는 격언을 절감하며 할인분양이라는 극약처방까지 동원해 처분할 수밖에 없게 되는 이유다. 


새 건물을 지으며 시장상황을 걱정하는 것은 어쩌면 사치스러운 고민일 수도 있다. 새 건물을 지어보기도 전에 사업을 접어야 하는 딱한 조합도 있다. 


시장에 내놓고 팔 새 건물도, 딱히 눈에 띄는 값나가는 재산도 없는 조합은 무슨 수로 그 동안 꾸어온 빚을 갚아야 할까. 돈을 꾸어온 건 조합이라는 법인이고 돈을 갚아야 하는 것도 법인인 조합일 뿐, 조합원들은 아무런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사람들이 많다. 


단, 관리처분계획이나 별도의 조합총회를 통해 조합원들의 비용분담비율이 정해져있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조합원들이 비용분담책임을 지게 된다는 거다. 


조합이 관리처분계획만 수립하지 않으면, 그리고 조합원 스스로가 비용을 분담하겠다는 안건에 찬성표만 던지지 않는다면 실패한 정비사업의 고통스러운 현장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홀가분하게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배 째! 나 조합원이야!’ 이 한마디면 만사형통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세상살이에서 더할 나위 없이 달콤한 말들은 모두 사기이며 오히려 삼키기 어려울 만큼 퍽퍽한 언사야 말로 진실에 가깝다는 것을. 속은 좀 켕겨도 두 눈 질끈 감기만 하면 아무런 책임 없이 지나갈 수 있는데도 굳이 안건을 만들어 총회를 소집한 후 자기들 호주머니를 털어 비용을 분담하기로 스스로 의결하는 우직하다 못해 바보스러운 조합원들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권리 있는 곳에 의무도 있다는 법상식과도 동떨어진 사고방식이다. 조합원의 비용분담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도시정비법과 정관 규정을 너무 가볍게 여긴다는 것도 치명적 약점이다.


 막말 좀 보태자면 법이론으로 보아주기엔 심히 양아치스러워 건전한 상식을 갖춘 사람이라면 결코 취할 바 못되는 요설일 뿐이다. 


그렇기에 사업을 위해 짊어지게 된 조합의 사업비 채무는 관리처분계획의 유무, 비용분담에 관한 총회결의 유무에 관계없이 궁극적으로는 조합원들이 공평하게 책임을 나누어 져야한다는 대전제를 포기하여서는 안 된다.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조합원들로 하여금 조합의 채무를 분담하게 할 것이냐는 구체적 방법론이다. 시각을 달리하여 조합에 돈을 꾸어준 입장에서 표현하자면 텅 빈 계좌밖에 없는 빈한한 조합을 넘어 구역 내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조합원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이 있는가. 있다면 그 방안이란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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