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9·1 부동산대책의 일환으로 ‘주택사업 관련 기반시설 기부채납 운영기준’을 마련하고 시행에 들어갔다. 하지만 과도한 기부채납을 막겠다는 취지에 대해서는 일선 업계가 ‘있으나 마나’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당초 정부는 정비사업 등에 대한 기부채납 요구가 지나치다고 판단, 일정 비율 이내로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기부채납 비율을 현실화해 사업성을 높여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발표된 운영기준에서는 기부채납 비율을 제한하고 있기는 하지만, 지자체가 추가로 기부채납을 요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놓아 효과가 미미할 것이란 예상이 우세하다. 국토부가 또 다시 지자체의 눈치 보기로 사실상 정책을 한발 물러난 셈이다.


지자체와의 힘겨루기로 정책이 후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정부는 9·1 부동산 대책을 통해 정비사업 공공관리제도를 축소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현재 서울의 경우 공공관리제도가 의무적으로 모든 구역에 적용되고 있으며, 시공자 선정도 사업시행인가 이후에나 가능한 상태다.


공공관리제도는 부동산 시장침체와 맞물려 정비사업 환경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에서도 이같이 판단하고 공공관리제도를 의무제가 아닌 주민선택제로 바꾸고, 시공자 선정시기도 원래대로 조합설립인가 이후에 선정할 수 있도록 환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서울시가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면서 공공관리제도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자체의 반발에 막혀 정부가 사실상 정책을 포기한 것이다.


국가의 정책은 신뢰성이 기본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하지만 최근 정부의 정책을 보면 이미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그동안 정부의 정책을 믿고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을 진행시켜 온 추진위·조합들은 배신감을 토로하고 있다.


출구전략도 마찬가지다. 전국에 과다하게 지정된 정비사업과 뉴타운지구에 대해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매몰비용에 대해서는 지원불가를 외쳤던 정부다. 하지만 재원과 지원방법, 지원규모 등 현실적인 대안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출구전략은 결국 시행됐다. 서울시가 국회의원을 통해 출구전략 제도 시행을 관철시켰지만, 정부에서는 수수방관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서울시의 무리한 출구전략과 정부의 방관은 현재 일선 업계의 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국에서 추진위·조합 해산에 따른 소송이 제기되고 있으며, 구역 내에서도 주민간의 갈등, 협력업체와의 분쟁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정부의 정책이 일관성 있게 추진됐다면, 정비사업은 물론 부동산 시장 활성화는 지금보다 빨라졌을 것이다. 정부가 눈치를 봐야 할 대상은 지자체가 아니다.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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