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을 반대하는 조합원이 해산동의서를 양껏 모아서 조합설립인가 취소를 신청했다고 치자. 그 신청이 적법한지를 가려야 하는 담당 공무원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살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답은 어렵지 않다. 조합설립인가를 취소할 만큼 충분한 해산동의서를 걷어 왔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충분한 해산동의서를 걷어 왔다고 하기 위해서는 해산동의서라고 이름 붙여진 서면의 쪽수만을 채운다고 될 일이 아니다. 법이 정한 대로의 적법한 양식을 갖춘 해산동의서를 충분히 모아야 한다. 


법이 정한 대로의 적법한 양식이라면 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 듯 싶다. 법이 이러이러한 양식으로 해산동의서를 걷으라고 했으니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조합원이 열심히 걷어온 동의서가 법에서 말하는 그 동의서인지 어렵지 않게 가려낼 수 있다. 


사정이 이렇게만 흘러간다면 무슨 문제가 있으랴. 상황이 진행되어 가면서 늘 애매한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고 그 애매한 문제를 둘러싼 다툼 속에서 변호사의 호구지책이 해결되는 법이다.


이제 실제로 다투어지고 있는 애매한 문제를 하나 던져보자. 담당 공무원이 제출된 해산동의서 뭉치를 넘기다 보니 해산동의서란 제목이 붙은 서면에 인감도장이 날인되고 인감증명서가 첨부된 것이 나왔다. 이 해산동의서를 어찌해야 할까. 


법을 찾아보자. 법에는 해산동의서 양식을 규정하면서 분명 자필서명과 지장을 찍도록 하고 여기에 신분증 사본 등을 덧붙이도록 하고 있다. 


분명히 이 해산동의서는 법에서 정한 양식과는 다르다. 자필서명과 지장 대신 인감도장이 찍혀 있고 신분증 사본 대신에 인감증명서가 붙어 있으니 말이다. 


법에서 정한 양식과 다르니 무효라고 보아야 할까. 그러나 역시 쉽지 않다. 인감도장을 찍고 인감증명서를 찍는 것은 그동안 인허가 업무를 처리하면서 숱하게 보아 왔던 익숙한 동의서 양식이기에 담당 공무원으로서 그 효력을 부인하자니 어딘가 모르게 켕기게 된다. 


법을 한 번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 옳거니. 동의서 양식에 관한 법이 개정되었다. 동의서 날짜를 보니 역시 이건 동의서 양식이 개정되기 전에 작성된 것이다. 그렇다면 응당 동의서 작성 당시에 시행되던 법을 따르면 될 일. 동의서 작성 당시에 적용되던 법은 분명 각종 동의서에 인감도장 날인과 인감증명서 첨부를 지시하고 있다. 그러니 이 해산동의서는 적법한 양식을 따른 유효한 동의서로 볼 수 있다는 쪽으로 담당공무원의 생각이 정리된다.  


실제 사례에서 행정청은 이 같은 동의서를 모두 유효한 동의서로 셈하여 해산동의율을 산정한 조합설립인가를 취소하였다. 조합은 즉각 해산동의율 계산이 잘못되었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하였고 소송과정에서 해산동의율 충족여부가 첨예하게 다투어졌다. 


주된 쟁점은 일부 해산동의서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작성·제출되었느냐’ 하는 것이었지만 인감도장을 찍고 인감증명서를 첨부한 해산동의서를 적법하게 볼 수 있느냐 하는 것 역시 쟁점으로 다투어졌다. 이에 대한 1심 법원의 판단은 과연 어땠을까. 판결문의 표현을 그대로 옮겨보자. 


“해산동의서에 토지등소유자의 자필서명과 지장날인을 하도록 한 도시정비법 제17조제1항은 그 시행일이 2012.8.2.이어서 그 시행일 이전까지는 기존의 방식대로 해산동의서에 인감도장을 날인하고 인감증명서를 첨부하는 방법으로 동의서를 작성하면 될 것인바, 이 사건 토지등소유자의 해산동의서 중 인감도장이 날인되고 인감증명서가 첨부된 각 조합해산동의서의 작성일자는 모두 2012.8.2. 이전이므로 개정된 위 도시정비법이 정한 자필서명과 지장날인 요건이 적용되지 아니한다”.


과연 이 같은 1심 법원의 판단은 수긍할만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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