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소재 한 재건축조합은 지난 5월 시공자 선정을 위한 입찰공고를 냈다. 이 구역의 면적은 7,000여㎡에 불과한 소규모 재건축으로 일반경쟁입찰 방식으로 선정절차를 진행했다. 하지만 현장설명회에 건설사들이 불참하면서 자동으로 유찰이 됐다. 현설에 참석하기 전 입찰보증금 10억원을 예치해야 한다는 조건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건설사들의 참여가 저조한 상황이지만, 시공자 재입찰공고에도 현설 전 입찰보증금 10억원을 다시 입찰조건으로 내걸었다.

[그래픽=홍영주 기자]
[그래픽=홍영주 기자]

건설사가 현장설명회에 참석하기 전에 입찰보증금의 일부 또는 전액을 납부토록 하는 이른바 ‘현설보증금’ 요구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극소수의 조합만이 시공자 선정 과정에서 현설보증금을 요구했지만, 올해 들어 현설보증금이 일반화되고 있는 추세다. 


문제는 건설사들의 관심이 높지 않은 구역에서도 현설보증금을 내걸면서 유찰되는 사례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사실상 수의계약을 이끌어내기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본지가 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 나라장터를 통해 지난 3개월간 자료를 조사한 결과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 관련 시공자 선정 입찰공고는 총 30건(중복·재입찰·공공참여형 등 제외)이었다. 이 중에서 현설보증금을 요구한 입찰공고는 총 11건으로 3건 중 1건 이상인 것으로 조사됐다. 보증금은 최소 1억원에서 최고 10억원 규모였다.


특히 현설보증금 규정을 내건 조합 중에서 절반 이상은 유찰이 된 상황이다. 11곳 중에서 7곳이 1회 이상 유찰됐으며, 이 중에서 4곳은 2회 이상 유찰로 수의계약을 통해 시공자를 선정했다. 현재 단 1곳만이 1차 입찰에서 경쟁구도가 성립돼 선정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한 조합 관계자는 “현장설명회에만 참여하고 정작 입찰에 참여하지 않은 건설사들이 많아 불가피하게 현설보증금을 납부토록 했다”며 “건설사가 입찰참여 의지가 있다면 현설보증금이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건설사의 입장은 달랐다. 입찰공고 시점부터 현장설명회까지는 통상적으로 7~10일에 불과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보증금을 마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현장설명회는 입찰참여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구체적인 사업 규모나 비용, 설계 등을 설명 받는 자리”라며 “수주 담당자가 입찰공고문만 가지고 현설보증금에 대한 결제를 올린다는 것은 실무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사전 접촉을 통해 개략적인 분석이나 검토가 있어야 가능한데, 이는 불공정 행위나 사전 담합이나 다름없다”며 “현설보증금은 사실상 현설에 참여하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법률전문가들도 과도한 현설보증금을 요구하는 것은 법적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입찰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이더라도 참여 자체를 막는 행위로 자칫 시공자 선정이 무효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법률사무소 국토의 김조영 대표변호사는 “조합장에 입후보하기 위해 10억원의 보증금을 내라고 한다면 조합장으로 나설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며 “법원에서도 현설보증금이 건설사들의 참여를 제한한 것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조운의 박일규 대표변호사도 “수억원의 현설보증금을 조건으로 내건 입찰을 일반경쟁입찰로 봐야 할지는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입찰은 경쟁이 이뤄져야 조합에 유리한 공사비와 조건을 이끌어 낼 수 있는데, 현설에 제한을 두는 것은 법적인 분쟁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법무법인 현의 안광순 변호사는 “법률에 명시적으로 현설보증금을 금지하는 규정이 없기 때문에 제한경쟁으로 볼 수는 없다”면서도 “참여 자체를 제한하는 사안인 만큼 총회 개최 금지 가처분 등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심민규 기자 smk@ar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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