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은 조합의 자치규약이다. 도시정비법 등 관계 법령이나 선량한 풍속에 위배되지 않는 한 정관은 조합의 내부적 규범으로서 마땅히 존중되어야 한다. 


한편 조합에는 최고의사결정기관인 조합원총회가 존재한다. 조합원총회는 도시정비법령 기타 정관이 정한 사항에 관해 조합의 중요한 의사를 형성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조합원총회의 의사결정이 도시정비법령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허용된다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조합원총회의 의사결정이 항상 정관의 테두리 내에서만 이루어져야하느냐는 것이다. 만약 정관의 규율과 상반되는 내용의 총회의결이 이루어졌을 때 그러한 총회의결의 효력은 어떻게 될까.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조합임원 연임은 임기만료 2개월 전에 의결하여야 하고 2개월 전에 연임을 의결하지 못하면 선임총회를 개최하여야 한다는 정관이 있다. 그런데 내부적 사정으로 임기만료 2개월이 경과하고 나서야 연임에 관한 안건이 조합원총회에서 가결되었다면 이 총회결의는 효력이 있을까.


우선 정관의 효력을 절대적으로 우선하는 의견이 있다. 해당 조합원총회의 결의는 정관이 정한 기한 내에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는 명백한 정관위반이므로 무효라는 견해다.


반대로 조합원총회의 최고의사결정기구로서의 지위에 주목하는 견해도 있다. 정관이 아무리 조합 내부를 규율하는 규범으로 기능한다고 하여도 법령과 동일시할 수는 없으며 조합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조합원총회가 의식적으로 정관내용과 다른 의사결정을 할 경우 이는 사실상 새로운 내용의 정관이 형성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반된 견해 중 어느 것이 타당할까. 올바른 답을 찾으려면 도시정비법령이 일정한 사항을 정관으로 정하도록 위임하고 있는 것의 의미를 되새겨보아야 한다.


도시정비법령이 정관에 위임한 사항들은 조합이 ‘자치적’으로 정하도록 허용한 것이다. ‘조합자치’야 말로 타율적으로 조합을 규율하는 도시정비법령과 자율규범으로서의 정관을 본질적으로 구분해주는 표지다. 


정관이 조합자치를 통하여 형성되는 자율적 규범이라는 것에 동의한다면 조합자치의 근간이 조합원총회라는 것도 어렵지 않게 납득할 수 있다. 정관의 내용을 형성하는 것은 조합에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의사결정사항이고 조합의 중요한 의사결정은 다름 아닌 조합원총회가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언해보면 정관이 규범력을 가지는 것은 상위법령이 조합의 자치를 허용하였기 때문이고, 조합의 자치는 조합원총회를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조합원총회가 정관의 내용과 상반된 내용을 의결한다면 형식적인 정관위반만을 논할 것이 아니라 기존정관의 내용이 총회의결을 통해 실질적으로 변경된 것은 아닌지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할 필요가 있다.


정관이 ‘주택분양가 원가연동제 시행지침’을 적용하여 분양가격을 정하도록 하였음에도 조합원총회에서 그 이상의 단가로 시공계약을 체결한 사안에서 “단가에 대하여 달리 정한 정관은 총회결의에 의하여 사실상 변경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시한 대법원의 판결은 정관과 조합원총회의 관계에 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관이 조합원총회를 통해 형성되는 조합자치의 산물이라는 본질에 착안해 정관과 다른 내용의 총회결의가 이루어질 경우 단순히 정관위반으로 관념해 효력을 부인하지 않고 ‘정관이 사실상 변경’되었다는 논리를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총회를 통해 표출된 조합원들의 의사를 존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관이 정한 2개월 기한을 지키지 못한 연임총회도 충분히 유효할 수 있음을 대법원 판례를 통해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박일규 변호사 / 법무법인 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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