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아시다시피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은 사업유형별로 조금씩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기존의 낡은 건물을 헐고 그 자리에 새로운 건물을 앉힌다는 커다란 개념에서는 별반 다를 것 없다. 

기존의 건물을 헐어내야 그 자리에 새로운 건물을 앉히는 작업이 가능하기에 건물을 헐기 위한 전제로써 사업시행자는 반드시 구역 내 토지·건물의 점유권을 확보하여야 한다. 사람이 살거나 생활하고 있는 건물을 그대로 허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조합원들이 재개발·재건축의 대의명분을 십분 이해하고 순순히 점유권을 양보해 준다면야 문제랄 것도 없지만 모든 조합원들이 한뜻으로 자신의 점유권을 흔쾌히 내어주는 사례는 현실적으로  많지 않다. 

특히 조합과 늘 대립각을 세우기 마련인 상가조합원들의 경우 점유권 자체를 중요한 협상의 무기로 삼기에 그들로부터 점유권을 넘겨받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역시 이러한 점유이전, 즉 명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사업시행자를 위한 적절한 대응방안을 마련하여 두고 있다. 

사업시행자가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얻게 되면 사업구역 내 소유자 등의 토지 또는 건축물 사용·수익권이 정지되도록 한 것이다. 사업시행자인 조합은 이러한 도시정비법의 규정을 원용하여 조합원들을 상대로 명도를 요구할 결정적인 근거를 갖게 된다.

그러나 조합에 점유권을 내어주지 않고 버티는 것을 협상의 지렛대로 삼고자 하는 일부 조합원들 역시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 관리처분계획 인가고시에 의한 점유권 상실 규정을 무력화하기 위하여 이들 역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이들에 의해 구사되는 법적 논리는 다양할 수 있으나 대체로 관리처분계획, 사업시행계획, 조합설립인가, 심지어 까마득히 떨어져 있는 추진위원회 승인이나 정비구역지정 등 각종 처분의 하자를 깨알같이 지적하여 관리처분계획의 효력을 저지코자 하는 시도로 집약된다. 

실제로 관리처분계획 자체의 하자 또는 선행처분의 하자가 뒤늦게 확인되어 조합이 명도소송에서 패소하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예컨대 서울서부지방법원 2008가단112875 판결 등).

관리처분계획 및 선행처분의 유효성이 전제되어야만 비로소 조합이 조합원에 대하여 명도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이라면 명소소송은 그 동안 조합이 행한 모든 처분의 유효성을 점검하는 살 떨리는 시험대가 되어 조합으로서는 무척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진실로 조합의 모든 처분이 적법·유효한 것으로 인정되어야만 조합이 조합원을 상대로 한 명도소송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일까. 

다행히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조합이 조합원에 대하여 명도를 요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결정적 근거인 조합정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모든 정비사업조합의 정관은 조합원의 이주의무를 빠짐없이 규정하고 있다. 조합원에게 있어 정관은 법령과도 같은 규범력을 발휘하기에 조합원에 대한 명도소송에서 훌륭한 근거로 작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때는 도시정비법령의 사용수익 금지규정의 취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하기 때문에 정관상의 이주의무도 적법한 관리처분계획의 인가를 전제로 한다는 해석론이 유력하게 주장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이 정관규정에 따른 조합원의 이주의무를 정면으로 인정하고 나섬에 따라 이러한 논리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사실 정관상의 명도의무를 인정한 대법원 판결은 그다지 놀라울 것도, 새로울 것도 없다. 정관이 조합원에 대하여 규범력을 지닌다는 당연한 법리를 확인한 것이기에 놀랍지 않고, 재건축결의가 무효라도 조합정관은 유효함을 인정한 그 옛날 주촉법 시절의 대법원 판결이 있었기에 새롭지 않다. 

이토록 놀랍지도, 새롭지도 않은 법리이기에 혹시 명도소송에서 활용하지 못하는 조합이 있다면 오히려 그것이 놀랍고도 새로운 일이 될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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