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릴 만큼 기다렸다. 죽기 전에 살길 찾자.” “박원순 시장 국제설계공모하면 승인해주겠다는 약속 이행하라.” “박원순 시장은 시민의 녹을 먹고, 시민은 녹물을 먹는다”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아파트 외벽에 부착된 현수막 내용입니다. 지난 9일 잠실5단지 재건축조합은 서울시청 앞에서 ‘서울시 행정갑질 적폐청산 및 인허가 촉구 궐기대회’를 개최했습니다. 조합이 사전 예고한 집회 참석인원은 약 2,000명이었습니다. 수차례 심의가 진행됐지만, 번번이 보류되면서 조합원들이 집단행동에 나선 것입니다.


강남구 은마아파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달 29일 은마아파트 주민 300여명은 서울시청 앞에 모여 “행정갑질을 중단하라”며 항의했습니다. 재건축을 추진하기 위해 지난 2016년 7월 국제현상설계공모를 진행하고, 49층이었던 기존 계획을 서울시의 요구대로 35층으로 변경했음에도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상정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강남권을 대표하는 두 단지는 심의의 벽에 가로막혀 수년째 사업이 진행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잠실주공5단지는 지난 1978년에 입주해 올해로 40년이 넘었고, 은마아파트도 1979년에 입주해 올해로 40년을 채웠습니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상 재건축 연한이 최대 30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 주민들의 생활이 어떨지 예상이 됩니다. 아마도 하루하루가 고통의 연속일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박원순 시장이 사실상 강남 재건축과의 전면전을 선포했습니다. 당분간 강남 재건축의 인허가를 내주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입니다.


박 시장은 지난 10일 TV 시사프로그램에서 “지난해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부동산 가격을 지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며 “지금 당장은 (강남 재건축 인가가)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강남 재건축은 워낙 대규모 단지이고, 재건축이 되면 투기 수요가 가세한다”며 “투기가 일어날 가능성이 많은 강남 쪽은 특별히 신경을 안 쓸 수 없다”고도 언급했습니다.


박 시장의 이번 발언은 잠실5단지와 은마아파트를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강남권의 주택가격 상승을 우려해 사실상 심의를 고의로 통과시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서울시는 잠실5단지와 은마아파트가 요구하는 사항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서울시가 층수 등을 강제하면서 국제설계공모를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시의 요구를 수용하면 심의를 통과시켜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말입니다. 물론 잠실5단지와 은마아파트는 인·허가권을 가진 시의 요구대로 정비계획안을 마련했습니다. 그럼에도 결과는 수년째 제자리걸음입니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는 재건축에 따른 주택가격이나 전세가 등의 악영향을 우려해 인가시기를 조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정해진 기준에 해당되는 경우 사업시행인가나 관리처분인가에 대한 시기 조정이 가능합니다. 이러한 법적 장치가 있음에도 단순히 주택가격이 상승할 것이란 우려만으로 재건축을 지연시킨다는 것은 행정남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장이라면 녹물이 쏟아져 나오고, 비가 새는 아파트에서 사는, 그래서 불편함을 넘어 안전까지 위협받고 있는 시민들을 먼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심민규 기자 smk@ar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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