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요구조건 맞춰줬더니…” 결국엔 무응찰?
책임준공 완화에 공사비도 올려줬는데 입찰 의지 확고했던 잠실우성에서 불참 방배15도 책임준공 회피 논란… 분열만 수의계약 노린 신당10에서도 철회 의사
삼성물산 건설부문(사장 오세철)이 정비사업 2조 클럽에 가입하면서 매서운 수주행보를 보이고 있는 반면, 요구조건을 맞춰줬던 일부 사업장에서는 무응찰로 빈축을 사고 있다. 특히 일부는 책임준공 완화 등 삼성물산의 요구조건을 수용했는데도 불구하고, 결국엔 입찰에 불참했다. 입찰 초기 단계에서 참여 의지를 표명했던 것과 달리, 해당 사업장 철수를 결정하는 등 도 넘는 ‘찔러보기’ 행태로 조합원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삼성물산은 지난 4일 입찰할 것으로 예상됐던 서울 송파구 잠실우성 재건축 시공자 선정 수주전에 참여하지 않았다. 당초 이 사업장은 삼성물산이 입찰 조건으로 내세웠던 요구사안을 조합이 수용했고, GS건설과의 2파전 구도가 예상됐다. 자사에 이득이 될 수 있는 조건들을 반영만 시킨 채 시공권 확보 경쟁은 외면한 셈이다.
실제로 입찰 절차 진행 중 삼성물산이 과도한 조건을 조합에 요구했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책임준공 완화와 공사비 상향조정 등이 대표적이다. 이 과정에서 조건완화 수용 여부를 두고 조합원간에 내부 갈등도 커졌다.
지난해 12월 조합은 경쟁 입찰이 조합원들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에 삼성물산의 요구조건을 수용한 새로운 입찰공고를 냈다. 책임준공 확약서 관련 문구를 완화했고, 3.3㎡당 공사비도 당초 880만원에서 920만원으로 상향했다.
자사의 요구가 수용되자 삼성물산은 단지 내 현수막을 내거는 등 입찰 참여를 기정사실화시켰으나, 정작 입찰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입찰에 참여할 의사도 없으면서 조건변경을 요구하는 등 군불을 떼며 조합원 갈등만 키웠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단지 내 한 조합원은 “삼성물산은 경쟁 입찰을 빌미로 과도한 조건들을 내세웠고, 무리한 요구사항인데도 불구하고 조합이 수용을 택했지만 정작 사업에는 참여하지 않았다”며 “원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이끌어가려는 삼성물산의 치밀한 전략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다”고 토로했다.
방배15구역도 마찬가지다. 이곳에서도 삼성물산은 책임준공 완화 등을 요구하면서 입찰참여 의사를 내비친 바 있다. 당시 책임준공 완화 등에 대한 조건 수용 여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면서 일부 이사가 해임되는 등 내분도 발생했다.
조합은 책임준공 확약에 대한 수정·완화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입찰지침서를 수립해 공고를 냈다. 공사가 중단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공사비 상승, 사업비용 증가 등에 대한 부담을 모두 조합원들이 짊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법조계에서도 책임준공은 정해진 기한 내 공사 완료를 목표로 조합이 설정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는 의견이다.
한 정비사업 전문 변호사는 “책임준공 확약의 핵심은 시공자에게 계약서에 명시된 기간 내에 공사의 완료 및 준공 의무를 부담시키는 것”이라며 “준공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면 대출금 금융기관에 대한 원리금 상환의무와 연체이자 배상 등 각종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즉, 책임준공은 기한 내 공사 완료에 대한 책임을 시공자가 부담하게 하는 조항”이라며 “조합원 등 이해관계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고 덧붙였다.
결론적으로 삼성물산은 자사의 책임준공 완화 요구조건이 수용되지 않자 입찰에 불참했다. 지난달 27일 입찰은 포스코이앤씨가 단독 참여했다.
신당10구역에도 삼성물산의 수주행보가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다. 앞서 이 사업장은 두 차례 시공자 선정이 유찰된 바 있다. GS건설과 HDC현대산업개발이 시공권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고, 공동도급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때 조합이 수의계약 전환을 검토하자 현장설명회에 단 한 차례도 참석하지 않았던 삼성물산이 갑자기 수주 의사를 밝혔다. 여기서도 삼성물산은 돌연 입찰 포기 의사를 전달했다. 조합이 책정한 3.3㎡당 공사비 830만원이 낮다는 이유에서다.
지방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전개됐다. 기존 시공자와 계약을 해지한 광주 신가동 재개발사업장 사례다. 삼성물산은 입찰참여 검토에 대한 조합 측 공문을 수령하고, 시간을 주면 입찰을 고려해보겠다고 회신했다.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광주 최초의 래미안’이 들어설 수 있다는 기대감이 웃돌았다.
그런데 삼성물산은 입찰 의사가 없다고 회신했고, 기대감은 한 순간에 실망으로 뒤바뀌었다. 결과적으로는 시간만 허비하도록 만들면서 시공자 선정만 지연시킨 것이다.
업계에서는 삼성물산의 수주행보가 사업 일정을 지연시키고, 조합원들 간에 갈등조장과 금전적 손해를 불러일으키는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한 건설사 수주담당 임원은 “삼성물산의 래미안 브랜드 정도면 좋은 조건들을 내걸고 경쟁에 나서면될 일인데, 책임준공 완화 등 무리한 내용들만 강요하고 있다”며 “결국엔 조합이 수용하더라도 입찰에 나서지 않았다는 점은 조합을 찔러보며 수의계약을 노린 의도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혁기 기자 lee@ar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