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하지 않은 자료도 공개대상일까

2024-12-06     이정아 변호사

아직 작성하지 않은 자료도 공개대상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그동안 끊임없이 다툼이 있어 왔다. 상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자료를 어떻게 공개할 수 있나’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너무나 당연해서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 같은 이 문제가 실무상 왜 논란이 된 것일까. 실제 사례를 살펴보자. 

조합에서 8월 30일 이사회를 개최하고 10월 30일 그 의사록을 작성한 다음 11월 4일 인터넷 등에 이를 공개했다. 조합장은 서류 및 관련 자료가 작성된 후 15일 이내에 공개하도록 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124조제1항을 위반한 것일까. 

도시정비법에 의사록 작성의무나 작성기한에 대한 명시적 규정이 없는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형벌법규이므로 문언에 충실하자는 입장과 규정보다는 처벌 필요성에 주안점을 둔 입장이 대립한 것. 

전자에 따르면 도시정비법은 ‘작성되거나 변경된 후 15일 이내’에 공개하도록 규정할 뿐이므로 작성되지 않은 서류는 공개할 의무가 없고 실제 작성일로부터 15일 내에 공개하면 된다. 그러나 그렇게 해석할 경우 서류를 작성하지 않거나 늦게 작성할수록 유리해지므로, 해석을 통해 늦어도 일정 기한까지는 작성하여 공개할 의무가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후자의 입장이었다.

법원의 판단은 어땠을까. 전자의 입장에서 기소된 조합임원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결도 있었지만,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도시정비법 제124조제1항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다. ‘매 분기가 끝나는 달의 다음 달 15일까지 공개 대상의 목록, 공개 자료의 개략적인 내용, 공개 장소 등을 조합원에게 서면으로 통지하여야 한다’고 규정한 도시정비법 시행령 제94조제2항이 주된 근거였다. 

비록 명시적인 규정은 없지만, 매 분기가 끝나고 다음 달 15일까지 조합원에게 공개 자료에 대해 서면으로 통지하도록 하고 있으므로, 늦어도 그 통지가 이루어져야 하는 시점인 ‘매 분기가 끝나는 다음 달 15일까지’는 서류 작성을 마치고 공개할 의무가 있다고 본 것이다. 

나아가 재판부는, 이와 같이 해석하지 않을 경우 오히려 서류를 늦게 작성할수록 공개일도 늦어지게 되거나 아예 작성하지 않는 경우에는 공개의무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고, 이는 정비사업의 투명성과 공공성을 확보하고 조합원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정보공개 제도를 규정한 도시정비법의 취지에 반한다고 판시하였다. 

그러나 최근 대법원은 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작성되지 않은 서류에 대해 공개의무가 있다고 해석하면 명문의 근거 없이 조합임원에게 해당 서류에 대한 작성의무까지 부담시키는 결과가 된다는 점을 들어, 도시정비법 제124조제1항에 따라 공개가 이루어지려면 각 호의 서류나 관련 자료가 작성되어 존재하여야 하고, 각 호의 서류나 관련 자료가 작성되어 존재한 바 없다면 조합임원에 대한 도시정비법 제124조제1항 위반죄는 성립할 여지가 없다고 못 박았다.

한편, 원심판결이 유죄의 근거로 삼은 도시정비법 시행령 제94조제2항과 관련해서는 정비사업의 시행과 관련된 서류 및 자료의 공개에 관한 조합원의 관심을 환기하고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통지의무를 부과하는 규정일 뿐, 작성의무를 부과하려는 규정이 아니므로, 이를 근거로 매 분기가 끝나는 달의 다음 달 15일까지 해당 서류 및 자료의 작성을 마치고 이를 공개할 의무까지 부담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시했다. 

원심판결은 처벌의 필요성에만 급급한 나머지 형사법의 대원칙인 죄형법정주의를 도외시하고 오로지 해석에 의해 법에 규정되지도 않은 ‘작성의무’를 만들어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대법원이 논란을 매듭지은 것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