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 = 홍영주 기자 ]
[ 그래픽 = 홍영주 기자 ]

최근 수년간 초등학생 사이에서 ‘휴거’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고 합니다. 초등학생이 휴거라는 단어의 뜻이나 제대로 알까 싶지만, 사실 종교적인 의미로 사용된 말이 아닙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아파트 브랜드인 ‘휴먼시아’와 ‘거지’를 합친 말에 앞글자만 딴 것입니다. 임대주택에 사는 아이들을 비하하는 표현인 셈이죠. 그동안 임대주택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부정적인 이미지가 여전하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정부와 지자체는 임대주택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한 정책들을 꾸준히 시행해왔습니다. 대표적인 제도가 바로 ‘소셜믹스(social mix)’입니다. 지난 2003년 처음 도입된 소셜믹스는 한 단지 내에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을 함께 조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회적·경제적 배경이 다른 주민들이 어울려 사는 사회통합이 목적이었죠.


하지만 소셜믹스 도입 초기 당시에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하나의 단지이면서도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의 동을 따로 건설해 출입구를 분리하거나, 편의시설 사용을 제한하는 등의 차별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분양세대에서도 할 말은 있었습니다. 분양가에는 기반시설 설치비나 편의시설 공사비 등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임대주택과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은 억울하다는 입장입니다. 형평성 차원에서만 보자면 돈을 더 많이 지불한 분양주택 주민들의 불만은 당연한 것일 수 있습니다. 특히 주택을 재산으로 보는 경향이 강한 우리나라에서는 임대주택의 혼합으로 집값이 하락할 것으로 우려하는 시각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재건축·재개발 단지에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정책을 추진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임대주택동을 별도로 짓거나, 특정 층·호수에만 배치하는 설계를 금지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최근 여의도와 강남의 재건축단지들이 정비계획 심의에서 줄줄이 퇴짜를 맞는 사례가 발생했습니다. 시는 소셜믹스를 제대로 적용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수정을 권고한 것입니다.


사실 임대주택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물리적인 혼합은 큰 결과를 거두기 힘듭니다. 소셜믹스를 처음으로 도입한 외국에서도 실패하는 사례가 많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단순히 물리적인 혼합보다는 임대주택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성숙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초등학생들조차 사는 곳으로 차별하는 사회에서 사회통합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심민규 기자 smk@ar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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