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간의 경쟁이 사라지고 있다. 출혈 경쟁을 하는 대신 불참을 선택하면서 강남 재건축 등 알짜 현장에서도 무혈입성을 하는 건설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투명한 경쟁을 유도하겠다던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이 시행된 이후 나타난 현상이다. 투명 경쟁은커녕 경쟁 자체가 사라지면서 공사비 인상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 수의계약으로 시공자를 선정한 일부 현장들에서는 이미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이 시행된지 만 1년도 되지 않아 벌써부터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쟁 아닌 수의계약만 성행… 시공자 선정 절반이 수의계약=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이 시행된 이후 수의계약으로 시공자를 선정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기준이 시행된 지난 2월 9일 이후 지난해 상반기에만 20여 곳에서 시공자를 선정했는데, 절반가량인 14곳이 수의계약을 체결했다.


실제로 상반기에 수의계약을 진행한 곳은 △양산 복지아파트 △부산 대평1구역 △안영 향림아파트 △파주 금촌새말지구 △노량진2구역 △인천 로얄맨션 △인천 학익2구역 △서울 봉천4-1-2구역 △천호4구역 △원주 단구동14통 △대구 대현2동 강변주택 △남양주 덕소5B구역 △서울 봉천12-1구역 △인천 도화1구역 등이다.
하반기에도 시공자를 찾지 못해 수의계약을 진행하거나, 올해로 시공자 선정을 미룬 곳들이 적지 않다. 강남의 요지에 위치한 반포주공1단지3주구가 지난 7월 수의계약으로 HDC현대산업개발을 선정했으며, 대치동 구마을3지구와 천호3구역 등도 참여 건설사 부족으로 유찰됐다. 또 준강남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과천 주암장군마을도 유효한 입찰이 성립되지 않아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역전 불가능한 선점 효과, 2회 유찰로 수의계약 전환 가능=강남권 수주전에도 무혈입성이 크게 늘어난 이유는 건설사들이 경쟁을 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처리기준에 따르면 시공자 후보의 홍보 장소와 기간이 정해져 있는데다, 기존처럼 파격적인 참여제안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한 건설사가 적극적으로 수주전에 나선다면 후발주자는 역전할 가능성이 거의 없게 되는 셈이다.


특히 지난 2017년 재건축초과이익환수를 앞두고 과열 경쟁이 벌어지면서 정부와 검찰의 눈이 건설사에 몰려있다는 점도 부담스럽다. 이미 일부 대형 건설사들이 조사를 받고 있는 만큼 출혈 경쟁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수의계약 전환 요건이 기존 3회 유찰에서 2회 유찰로 줄어든 것도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서울시의 공공지원 시공자 선정기준에 따라 시공자를 선정할 경우 입찰에서 선정총회까지는 최소 3달 이상이 소요된다. 따라서 3회 유찰까지는 1년 가까운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수의계약 요건이 완화되면서 굳이 경쟁입찰을 성립하지 않아도 된다는 분위기가 생겼다. 현장설명회에 참여하지 않거나, 단독으로 참여할 경우 자동 유찰되기 때문에 빠르면 1~2달이면 수의계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독점’… 공사비 늘어 조합원 부담 증가 우려도=경쟁이 사라지면서 공사비 증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수의계약은 경쟁 없이 시공자를 선정하는 방식인 만큼 건설사가 조합보다 우위에서 계약을 진행할 수 있다. 사실상 ‘독점’과 마찬가지여서 공사비가 올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결국 공사비 상승은 조합원 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다만 경쟁입찰과 수의계약에 따른 공사비 차이는 크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한 업계 전문가는 “경쟁입찰로 시공자를 선정하더라도 향후 유행하는 설계나 특화 등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공사비는 비슷해진다”며 “입찰 방식보다는 협상 과정에서 조합이 얼마나 준비를 철저하게 하느냐가 오히려 공사비 상승을 억제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심민규 기자 smk@ar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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