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역사·보존’ 도그마에 사로잡혀 정비사업 등 구도심 재정비는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업장 곳곳에서는 시가 ‘흔적남기기’에만 집착하고 있는 나머지 사업지연, 주민안전 우려 등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시가 주민들의 요구를 묵살하면서까지 남겨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요소들이 진정 보존 가치가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일례로 시는 강남구 개포주공1·4단지와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재건축 건축심의 과정에서 일부 동을 헐지 않도록 요구한 바 있습니다. 또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건축심의 과정에서는 아파트 한 동과 단지 중앙에 있는 굴뚝을 남기라는 조건을 달았습니다. 


하지만 전통적인 건축물도 아닌 현대식 아파트가 과연 보존할만한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의견이 많습니다. 향후 첨단 시설을 갖춘 새 아파트 단지 사이에서 미관을 해치는 흉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고, 사유재산 침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죠.


시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골목길조차 보존 가치에 대한 비중을 높게 두고 있습니다. 올해 용산구 후암동과 성북구 성북동 일대에 폭 1.5m 남짓의 골목길 본래 모습을 보존한 채 길가에 커뮤니티 공간, 마을 텃밭, 골목전망대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이를 두고 소방차 진입로가 확보되지 않은 골목길까지 기존 모습 그대로 보존하면서, 자칫 발생할 수 있는 화재 등의 재난으로부터 주민 안전성 확보는 배제됐다는 지적입니다.


이처럼 역사·문화 보존을 이유로 시가 일방 행정을 펼치고 있는 부분에 대해 법원에서 제동을 걸었던 사례도 있습니다. 종로구 옥인1구역은 지난해 한옥 등 역사·문화 보존을 이유로 사업이 지체돼오다가 직권해제 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후 법원은 조합이 제기한 ‘직권해제 대상구역 선정처분 취소’ 소송에서 시 조례가 상위법인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의 한계를 벗어나고 있다는 이유로 집행정지를 결정했습니다. 특히 법원은 역사·문화적 가치 보전이라는 사유가 정비사업 추진 상황과 법률상 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재개발·재건축은 시민들의 주거환경 개선, 재난으로부터 안전 확보 등을 위한 구도심 재정비가 골자입니다. 하지만 정비사업을 대하는 시 행정 절차를 보면 퇴보를 자행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시가 사유재산인 노후 아파트를 비롯해 골목길까지 역사·보존 명분을 들이대는 것은 도시 경쟁력은 외면하고, 흔적 남기기에만 집착하는 단견일 뿐입니다.

이혁기 기자 lee@ar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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