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상 재건축조합원이 될 자격은 토지와 건축물을 함께 소유한 자에게만 주어진다. 토지만을 소유하거나 건축물만을 소유한 자는 재건축사업에 참여할 기회가 봉쇄되어 있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조합원이 될 가능성이 없는 토지 또는 건축물만의 소유자에게 조합설립동의권을 부여하지 않아도 법리적으로 크게 부당할 것은 없다. 반대로 사업에 참여하지도 못한 채 소유권을 넘겨주고 떠나야 하는 이들의 처지를 고려해보면 조합설립동의권을 부여하는 것이 옳은 처사인 듯도 싶다. 이현령 비현령처럼 비추어지는 이 같은 경우를 흔히 ‘입법정책의 문제’로 칭한다. 입법자들이 나름의 고려 하에 어느 쪽 결론이든 선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예전 도시정비법은 주택단지와 주택단지가 아닌 곳을 구분하여 단지외 토지나 건축물 소유자에게만 조합설립동의권을 부여하였었다. 이러한 구분은 법원 판결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대법원은 주택단지 내 토지만을 소유하고 있는 자에 대하여는 최고절차 없이 매도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고 조합의 매도청구권 행사기간의 기산점은 조합설립등기를 마친 때로 보았다(대법원 2006다56572 판결).


반면 주택단지가 아닌 지역의 토지 또는 건축물 소유자는 조합설립동의권이 있기 때문에 최고절차에 대하여 법률상 이해관계를 갖는다고 보아 매도청구 전에 최고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보았다(대법원 2009다95516 판결). 조합설립동의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최고절차 필요 여부가 결정된다고 본 것이다.


현재의 도시정비법은 주택단지내 토지만소유한 자에게도 조합설립동의권을 부여하도록 개정되었으니 이제 최고절차 없이 매도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사라졌다고 보아야겠다.  


문제는 애당초 조합원 자격이 없는 토지나 건축물 소유자에게 최고를 하였는데 덜컥 조합설립동의서가 제출되는 경우다. 동의서를 제출하는 사람은 조합의 사업에 적극 협조함으로써 일단 매도청구를 피하고자 하는 생각이 강할 것이다. 일부 조합에서는 동의서 제출자를 배려하여 일단 매도청구권 행사를 거두고 추후 현금청산자에 준하여 처리하려는 방침을 세우고 있는 모양이다. 동의서까지 제출하여 사업을 돕겠다는데 매도청구로 끝장을 보는 게 너무 야박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도시정비법은 그 정도로 인간미가 넘치진 않는다. 동의서를 제출하였건 그렇지 않건 건축물 또는 토지만 소유한 자는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매도청구 대상자가 된다고 야무지게 규정하고 있으니 말이다.


일부 조합의 실무례처럼 매도청구를 거두고 현금청산자에 준하여 처리하는 것이 현명한 해결방안이 될 수 있을까. 동의서 제출자를 충분히 배려한다는 측면에서는 대단히 매끄러운 해결방안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향후 조합원이 아님을 이유로 현금청산자에 준하는 청산방법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설 경우 또다시 조합설립동의서를 재징구하여 매도청구권을 되살려야 하는 등 복잡한 상황이 빚어질 만일의 사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매도청구를 위한 최고제도의 존재 이유는 일방적으로 소유권을 박탈하기 이전에 조합원으로서 재건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주자는 데 있다. 애당초 재건축에 조합원으로서 참여할 기회가 없는 자들에게 조합설립동의권을 이유로 최고가 필요하다는 것은 다분히 형식논리적이다. 그렇다고 대법원 판결을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최고를 생략할 수는 없다.


동의서를 제출하는 마음은 고마우나 법을 따라야 하는 조합으로서는 매도청구 제도를 활용하는 것 이외에 별 도리가 없다. 소송과정에서 적정선의 합의를 시도하는 등 상대적으로 유연한 자세를 취하는 것 정도가 동의서 제출자들을 배려하기 위한 조합의 현실적 방안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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